바람 조문 - 이서화
한적한 국도변에 조화(弔花)가 떨어져 있다
내막을 모르는 죽음의 뒤끝처럼
누워있는 화환의 사인은
어느 급정거이거나 기우뚱 기울어진 길의 이유겠지만
국화꽃들은 이미 시들어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잡풀 속
며칠 누워있었을 화환
삼일 동안 조문을 마치고도 아직 싱싱한 꽃송이들
잡풀 속 어딘가에 죽어 있을
야생의 목숨들 위해
스스로 이쯤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같이 짓물러가자고 같이 말라가자고 누워있는 화환
보낸 이의 이름도 사라지고
근조(謹弔) 글자만 남기고 시들어 간다
길섶의 바랭이 강아지풀
기름진 밭에서 밀려난 씨앗들이 누렇게 말라간다
누군가 건드리면 그 틈에 와락 쏟아놓는 눈물처럼
울음이 빠져나간 뒤끝은 건조하다
지금쯤 어느 망자도 며칠간의 축제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고 있을 것 같다
먼지들이 덮여 있는 화환 위로
뒤늦은 풀씨들이 떨어진다
밟으면 바스락거릴 슬픔도 없이 흘러가는 국도변
가끔 망자와 먼 인연이었다는 듯
화환 근처에 뒤늦게 찾아와 우는 바람소리만 들린다
*시집, 굴절을 읽다, 시로여는세상
시반(屍斑) - 이서화
시반이라는 말
죽은 후 기대고 있던 흔적일까
옅은 자주색 반점이 등에 가득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뜸을 들이는 호칭이 전화전에 자꾸 감겼다
요철 같은 지방도를 달렸다
등이 추웠던 어머니
전기장판에 등을 대고 가셨다
고온은 자주 뒤척거리게 해서 싫구나
가끔 병석을 찾아 내가 한 일은
전기장판 온도를 올리는 일이 전부였다
수의로 갈아입은 어머니 몸에는
밤새 열어놓은 문고리가 있었고
새벽에야 들어오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 등에서 떨어지지 않던
전기장판의 열선 무늬가 아직 따뜻했었다
아버지 몸에는 따듯한 열선이 없었다
몸이 붓는 병은 외로운 병이다
허전한 것들을 너무 많이 넣고 있던 병이다
마지막까지 몸을 따라 돌았을
어머니의 열선은 천천히 식어갔다
저온으로 온도를 낮추고 스스로 전원을 뽑듯
# 우울함을 안기는 시지만 읽을수록 참 잘 쓴 시라는 생각을 한다. 살아 가는 한 죽음은 늘 쌍둥이처럼 삶과 함께 하는 법,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음을 멀리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니 멀찍이 떨추려고 한다. 내가 세상에 나온 것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다. 지구 질량의 법칙이다. 내 삶이 공짜가 아님을 명심한다. 살고 싶다. 그리 행복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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