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야 이제 돌아오너라 - 강회진
살눈 내리는 사막은 이른 아침부터
싸륵싸륵 자리바꿈 한다
눈 내린 아침 대빗질 소리
이 산골짝까지 찾아올 그 누구 있다고
이른 아침부터 눈을 치나
아버지가 만드는 대빗질 소리
내 귀를 쓸고 소나무 숲으로 사라진다
하루 종일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정성껏 쓸어놓은 길 따라 나섰다가
눈꽃 핀 살구나무 아래 휘적휘적 걸어오던
아버지, 저 멀리 서 있다
착한 아이야 이제 돌아오너라
모래밭 맨발로 걷다가
꺼내 본 아버지의 짧은 전언
붙박이별 따라 사막 너머로 사라진 대상들
긴 옷자락 끌리는 소리
이른 아침 눈을 치던 아버지의 대빗질 소리
모든 피붙이의 길은 길 쪽으로 나 있다
*시집,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수목장(樹木葬) - 강회진
낯선 땅 어딘가 앵두나무면 어떨까
봄 오면 가지와 가지 사이
비밀스레 자리바꿈하는 봄볕 핥아먹으며
꽃눈 품었다가
바람 한 줄기 불라치면
잔가지마다 꽃향기 풀어놓는 나무는
늦저녁 조록조록 매달린 꽃등 아래
사랑 나누는 목선 정갈한 청춘들 슬쩍
흘겨도 보리라
애채가 생길 수는 있을지라도
조금 더 뜨겁게 영글겠지
길게 늘인 가지 사이 물 오른 열매들
누군가의 캄캄한 입 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 사이 몸피 키운 잎사귀들
잘 닦은 허공에 한 점 점묘화로 떠오르고
어룽대는 그림자 베고 또 누군가는
발치에 길게 누워
앵두처럼 잘 익은 꿈 꾸리라
# 강회진 시인은 1975년 충남 홍성 출생으로 2004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반하다, 홀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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