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步 40

제주 올레길 1코스

예전에 제주 올레길을 몇 번 걸었다. 일정이 편하고 좋은 곳만 골라 곶감 빼 먹듯이 그냥 군데군데 선택해서 걸었다. 올 초에 전국 올레길을 하나씩 걷기로 했다. 걷더라도 더 나이 먹기 전에 조금 체계적으로 걸어보리라 결심하고 첫 일정으로 제주를 잡았다. 훗날 추억이 바닥날 때쯤 일기장처럼 혼자 보기 위한 기록이다. 허름한 흔적일지라도 블로그에서 PC 큰 화면으로 사진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올레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함께 걸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기도 한다. 둘이어도 좋고 혼자 걸으면 더 좋은 길이다. 1코스는 시흥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올라가면 시작점이 나온다. 완연한 봄날의 아침이다. 올레길이 시작되는 곳에 안내소가 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지 무지 하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앉아..

일곱 步 2019.03.29

도봉산 자락 산동네, 안골

안골은 도봉산 자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옛 정취가 남아 있는 동네다. 개발 광풍 시대라 개발이 완전히 묶여 있는 곳 빼고는 웬만한 곳은 졸부들의 투기판이다. 이곳이라고 비켜가진 않겠으나 그래도 때가 덜 묻은 곳이다. 그래서 동네 공터에 주차된 차도 많지 않고 아직 연탄을 땔 정도로 에너지도 적게 쓴다. 미세 먼지,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 등 지구가 아픈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을처럼 느리게 변하는 곳이 필요한 이유다. 나이 많은 느티나무가 죽고 늦가을이라 잎이 전부 졌지만 새로 심은 나무도 울창하게 자랐다. 동네 사람들도 친절하다. 시골처럼 김장을 위해 무 배추를 심은 텃밭도 있다. 찾아 가기 불편한 곳을 좋아한다. 혼자 ..

일곱 步 2018.11.22

김제 바람길을 걷다

오래전 일이다. 20년 전쯤? 정확한 년도는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것은 늦게까지 다소 더웠던 가을이었고 갑자기 추워진 11월의 늦가을이었다는 거다. 김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마도 부안의 변산과 내소사를 먼저 들렀을 것이다. 아득하게 펼쳐진 들녘이 전부 베어진 볏자국었다. 간만에 다시 김제를 갔다. 김제 터미널에서 벽골제를 먼저 갔다가 다시 김제 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올 때 탔던 버스 기사다. 그가 묻는다. 어디 가오? 망해사요.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맞다. 기사님한테는 볼 게 없는 절이다. 나는 망해사에서 바다만 봐도 좋았다. 볼 게 차고 넘쳤다. 망해사가 볼 게 없다는 기사님의 말에 원래는 코스모스 핀 바람길을 걷기 위해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전리 가는 버스를 탔다. 나와 ..

일곱 步 2018.09.30

창신동에서 낙산, 이화동까지

창신동을 거쳐 낙산을 오르기로 했다. 몇 번 걸어본 바로는 이 길은 계단과 경사진 곳이 많아 등산 같은 산책길이다. 그리고 개발이 덜 되어 정겨운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다. 창신동은 봉제 공장이 많은 동네다. 전태일 재단도 오랜 기간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다. 동대문역에서 내려 천천히 창신동 골목을 오른다. 몇 개의 봉제 공장을 지나면 나팔꽃 화분이 놓인 골목길을 만난다. 이발관도 몇 곳을 지날 것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서민 아파트다. 이런 곳일수록 에너지를 적게 쓰는 친환경 아파트다. 간판 글자가 떨어져 나간 소박한 가게가 보인다. 떨어진 글자는 무슨 자였을까. 하드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 다시 천천히 걷는다. 아주 소박한 가격의 방 광고다. 이곳 건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당연 투기..

일곱 步 2018.09.02

영암 월출산

월출산은 다른 국립공원에 비하면 등산로가 단순하다. 천황사에서 시작해 도갑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거의 30년 만에 오르는 것 같다. 이 산이 너무 멀리 있기도 하지만 가볼 산이 너무 많아서 두 번씩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철부지 시절 젊음을 낭비하며 청춘을 증오할 때 동무 몇과 청바지를 입고 올랐었다. 그 때는 월출산이 국립공원이 아니었지만 구름다리는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영암의 가을 들판이 눈물나게 좋았다.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 한데 황금 들판은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낭비해버린 청춘이 내 나이듦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언제 이렇게 멀리 와 버렸을까. 천황사는 아주 소박한 절이다. 전국 여느 절처럼 확장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초록으로 물 들고 있는 월출산 바위들이..

일곱 步 2014.05.18

덕룡산, 주작산

덕룡산과 주작산은 능선이 붙어 있어서 대부분 같이 등산을 한다. 강진 소석문 쪽에서 시작하면 덕룡산이 먼저 나오고 해남 오소재에서 출발하면 주작산을 먼저 오르게 된다. 오소재 쪽이 다소 험한 편이라 출발을 소석문에서 시작했다. 강진 시내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소석문 입구 마을에서 내렸다. 버스 기사가 산을 잘 아는지 들어가는 입구를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내려준다. 평화로운 마을의 마늘밭으로 봄날이 가고 있었다. 주작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 등산로는 다소 험한 편이다. 이 줄을 타고 경사진 바위를 올라야 한다. 진달래 지고 난 다음 철쭉이 바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긴 세월 스스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철쭉들이다. 30분쯤 부지런히 오르면 덕룡산 능선이 시작되는 산마루에 닿는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멀리..

일곱 步 2014.05.11

서산 아라메길

개심사를 갈 때부터 이 길을 걷기로 작정을 했다. 해미에서 걸어 개심사로 갈까 아니면 개심사에서 출발해 해미읍성으로 걸을까 방향만 정하지 않았다. 일정을 보니 개심사에서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개심사를 실컷 구경하고 뒷산까지 오른 후에 이 길로 접어들었다. 서산시에서 조성한 아라메길이다. 이름도 멋지다. 바다를 뜻하는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를 합쳐 순 우리말인 아라메가 되었다. 말 그대로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길이다. 아직 완전 개통은 아닌데 몇 년 후에는 서해안 대표 트레킹 길이 될 듯하다. 입구에 이렇게 화사한 꽃이 나그네를 반긴다. 신고식 제대로 한다. 꽃이 지면 새잎이 돋는다. 자연의 이치다. 봄은 연둣빛으로 변해 더욱 무르익었다. 산불이 났는가 보다. 산 한쪽에 화상 자국이 선명하다. 이 와중..

일곱 步 2014.05.07

1박 3일 지리산 종주 2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달게 마신다. 차비를 갖춰 8시쯤 세석 산장을 출발했다. 지난 밤에 내가 누운 자리 주변은 전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시작으로 말문이 열리고 산 이야기가 펼쳐졌다. 산꾼들의 등산 경력이 화려하다. 나도 지리산이라면 꽤 여러 번 왔기에 웬만한 코스는 알고 있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 든 등산 코스는 거미줄처럼 세세하다. 산장을 출발해서 뒤돌아 보니 세석 산장이 보인다. 잘 있거라. 산장아, 내 또 언제 와서 너의 무릎에 고단한 다리를 올릴 수 있을까. 비는 갰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푸둥하다. 풍경은 자세히 볼 수 없어도 이런 날이 산을 걷기에는 좋다. 등산을 하다 잠시 쉴 때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미 지나친 길은 내 길이 아니건만,, 장..

일곱 步 2013.05.20

1박 3일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를 1박 3일로 다녀왔다. 예전에는 지리산을 세 번 가면 한 번은 종주였는데 근래 들어 뜸해졌다. 성삼재에서 새벽에 출발해 노고단에 도착하니 해가 뜨고 있다. 해는 매일 뜨지만 일년에 해뜨는 모습을 보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이렇게 산에 와야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산에서 보는 일출은 다른 맛이 있다. 일출을 본 후 노고단 대피소에 내려와 아침을 해결했다. 달달한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출발했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능선길에 서니 지리산의 넉넉함이 새삼 밀려온다. 임걸령 지나 노루목에서 반야봉 쪽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종주 등산객들은 반야봉을 들르지 않는다. 반야봉 가는 능선에 철쭉이 지천으로 피었다. 막바지 봄이 산색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반야봉에 앉아 한동안 능선을 내려다 보..

일곱 步 2013.05.20

여수 영취산

올 봄에는 꼭 진달래를 보러 가야지 했는데 그만 때를 놓쳤다. 무궁화호 야간열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니 새벽이다. 몇 명이 자고 있는 대합실 의자에서 배낭에 기대어 두 시간쯤 눈을 붙였다.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삶을 계란에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했다. 중년 부부가 있기에 영취산 가는 길을 물었다. "진달래 보러 왔어요? 꽃이 다 졌을 텐디,," 남자의 말에 아내가 말한다. "올 봄이 쬐끔 추워서 아적은 있을 거요." 꽃이 피면 어떻고 지면 어떠리. 나는 그들이 가르쳐준 버스를 타고 영취산 입구에서 내렸다. 이른 아침의 흥국사는 사람이 없다. 며칠전까지 진달래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한적한 경내를 돌며 이 조용한 봄날을 만끽했다. 이 맛에 여행한다. 만발한 진달래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

일곱 步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