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20년 전쯤? 정확한 년도는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것은 늦게까지 다소 더웠던 가을이었고 갑자기 추워진 11월의 늦가을이었다는 거다. 김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마도 부안의 변산과 내소사를 먼저 들렀을 것이다. 아득하게 펼쳐진 들녘이 전부 베어진 볏자국었다.
간만에 다시 김제를 갔다. 김제 터미널에서 벽골제를 먼저 갔다가 다시 김제 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올 때 탔던 버스 기사다. 그가 묻는다. 어디 가오? 망해사요.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맞다. 기사님한테는 볼 게 없는 절이다. 나는 망해사에서 바다만 봐도 좋았다. 볼 게 차고 넘쳤다.
망해사가 볼 게 없다는 기사님의 말에 원래는 코스모스 핀 바람길을 걷기 위해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전리 가는 버스를 탔다. 나와 몇 명의 노인들을 싣고 버스는 시원하게 달린다. 거전리부터 걷기에는 다소 무리일 것 같아 심포항 부근에서 내렸다.
안하에서 내렸다. 심포항을 가기 전 구멍가게에서 바나나우유와 카스테라로 요기를 했다. 지평선이 보이는 만찬이라니,,
심포항으로 가는 마을길을 가로 질렀다. 늦더위 속에서 가을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몇 척의 낚싯배만 떠 있는 신포항이다. 새만금 때문인가. 포구가 제 기능을 잃고 망가진 느낌이다.
걷는 목적은 길 안의 풍경을 가슴에 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걸을 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심포 마을을 지나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 된다. 풍경에 취해 비몽사몽이다.
누가 코스모스를 가을의 전령이라 했는가. 완벽한 가을 날씨다.
이따금 버스가 지나가는 길을 쉬엄쉬엄 걷는다. 포장길이라 다소 딱딱했지만 신발이 튼튼해서 다행이다.
망해사에 도착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전망이 너무 좋았다.
정적이 흐르는 망해사의 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한동안 바라 보았다.
망해사를 나와 큰 길 대신 작은 샛길로 빠졌다.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전망대가 나온다.
마을 앞도 걸어 보고, 초등학교도 들어가 보고,, 걷기 여행의 특권이다.
구멍가게가 있는 건물에 자판기가 놓였다. 그 옆의 가지런한 의자들,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이다.
잠시 쉬고 있는 정미소, 가을걷이가 끝나면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에도 가을이 왔다. 대문 앞에 핀 모스모스가 유난히 쓸쓸하다.
버스정류장 안에 놓이 소파다. 뉘집에서 버린 것을 갖다 논 모양이다. 승객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유용할 것이다.
버스 정류장이 자가용 주차장이 되었다. 잠깐 주차는 아닌 것 같고, 소파 놓인 정류장과 비교된다.
죽은 은행나무가 나란히 섰다. 희한하게 일정하게 늘어선 가로수 중 이 두 그루만 죽었다.
감나무가 길 가에서 가을 햇볕을 쬐고 있다.
드디어 진봉 면사무소가 있는 관기에 도착했다. 오늘 걸은 바람길의 종점이다. 풍경에 취해 걷다 쉬다를 반복하느라 예상보다 더 걸렸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들길에 눈과 마음이 호강한 날이었다.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마을 골목을 잠시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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