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Ripley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고 그 거짓말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나도 예전에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데 그것이 리플리 증후군이란 것은 몰랐다. 그냥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도 거짓말로 자신의 일상을 치장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거짓말이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여럿이라 제목이 다소 식상하지만 내용에 가장 적합한 제목이기도 하다. 아영(김꽃비)은 피부과에서 간호사 보조로 일하며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집에는 재수생 동생과 알콜 중독자 언니가 늘 아영의 어깨를 짓누른다.
순박한 남자 친구 태호에게까지 아영은 아버지가 중견 기업 사장이고 동생은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 또 거짓말을 보태야 한다. 집을 살 것처럼 고급 아파트를 구경하면서 부잣집 아가씨 행세를 하며 잠시나마 행복에 젖는다.
고급 가전제품을 파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는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과 함께 계좌이체를 해주겠다고 구입 계약을 하고 와서는 집에 오자마자 취소 전화를 건다. 당연 구매 계약서에 적은 이름과 강남의 집 주소는 가짜다.
외제차 매장에서 시승을 해 보는 등 실컷 구경을 하고 똑같은 수법으로 계약과 취소를 반복한다. 이런 거짓말로 허기진 거짓 욕구를 채우던 행복도 잠시 급기야 몇 달치 월급으로 메꿰야 할 일이 생긴다.
대형 아파트에나 들어갈 고급 대형 냉장고를 쇼핑하고 취소하는 걸 깜빡 잊어 집앞에 냉장고가 배달된 것이다. 남자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겨우 메꾼 아영은 그 거짓말을 무마하기 위해 더 대담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점점 직장에서도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신뢰를 잃어가고 아영은 회사를 그만 두게 되는 사태까지 이른다.
이 영화를 만든 김동명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이런 영화는 천상 영화제 같은 데서 상영하거나 짧은 개봉으로 잊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긴 여운이 남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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