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인생의 모든 계절 - 박노해

마루안 2022. 9. 18. 21:43

 

 

내 인생의 모든 계절 - 박노해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보는 봄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

안팎으로 시원히 문을 여는 여름

 

가을은 갈 게 많아서 가을

씨앗 하나만 품고 다 가시라는 가을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

벌거벗은 힘으로 근본을 키우는 겨울

 

그러니 내 인생의 모든 계절이 좋았다

내 인생의 힘든 날들이 다 희망이었다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회갑(回甲)에 - 박노해

 

 

60갑자 생의

한 순환을 완주한 나이

회갑(回甲)에,

첫마음의 등불을 들고

내 살아온 날을 비춰본다

 

스무 살에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썼다

 

저를 쉽게 죽지 말게 하시고

고문대 위에서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배신하지 않게 하시고

가난과 고난과 비난 가운데

꿋꿋이 나의 길을 가게 하시고

내 생의 최후의 마침표로

약속을 지키게 하소서

 

살아남은 나는

세 번째 스무 살,

회갑에 다시 쓴다

하던 대로

해오 것을

끝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