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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의 여백 - 박남준

동백의 여백 - 박남준 동박새가 찾아와 쉴 자리가 동백의 여백이다 그늘을 견딜 수 없는 숙명도 있지만 다른 나무의 그늘에 들어야 잎과 꽃의 여백을 만드는 나무가 있다 동백의 여백을 생각한다 혼자 남은 동백은 지독하도록 촘촘하게 모든 여백을 다 지워서 가지를 뻗고 잎을 매달아 그 아래 올 어린 동백의 그늘을 만든다 곁에 다가와 노래하는 자리가 그 사람의 여백일 것이다 여백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여백을 위해 스스로 그늘을 가득 채워 버렸는가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 박남준 불시착의 연속에 있었다 바오밥나무들이 점등을 시작한 비상활주로의 길 끝에 사막은 시작되었다 사막이 공간이동으로 뛰어든 이유는 불시착의 그 처음이 발단이었다는 정도로 생략하겠다 그리하여..

한줄 詩 2021.07.01

어떤 이별 - 전인식

어떤 이별 - 전인식 -구두와 대머리 아저씨 전철이 막 출발하려고 스르르 문이 닫힐 때 이 열차 타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듯 머리가 약간 벗어진 중년의 아저씨 이종범이 2루 도루를 감행할 때의 슬라이딩으로 아슬아슬 한쪽 발이 먼저 닿아 세이프되려는 순간 슬금슬금 움직이던 열차에 결국 사람 대신 벗겨진 구두 한 짝만 타고 말았습니다 처음 신고 나온 반짝거리는 새 구두 한 짝만이 볼일 급한 주인 대신 어디 다녀올 듯 객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신발을 찾으려, 열차를 잡으려 창밖에 아저씨 손짓을 해가며 전철과 나란히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안타까운 광경 앞에 사람들 하나같이 탄성을 지르며 터질 듯한 웃음으로 아쉬움을 대신했습니다 인정 많은 기관사 몇 발짝 움직이던 기차를 멈춰세워 다시 한 번 문이..

한줄 詩 2021.06.30

필요 이상의 호기심 - 박순호

필요 이상의 호기심 - 박순호 햇빛이 펄럭거린다 타락한 웃음, 검은 어깻죽지에도 불의 혀가 핥고 간 흰 재 위에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과묵한 표정 앞으로 두 팔을 펼치는 찬란 쳐내고 쳐내도 거친 표현이 웃자란다 나는 몸을 낮추고 깨지기 쉬운 가장자리부터 약속되어 있지 않는 모든 것 고여 있는 침묵을 움켜쥐지만 어딘가에는 차가운 성질이 숨어 있고 막상 내가 꺼내놓은 물건들마다 싸구려 냄새가 진동한다 쓸쓸하기 짝이 없는 건방진 말투 필요 이상의 호기심 애초부터 싹수가 노란 아이들은 그늘을 늘려갔고 즉흥적인 기분은 대부분 찢겨져 파기된다 안개를 들춰내고 푸른 줄기를 꽂아놓는다면 서정이 되는가 그렇다면 바싹 마른 잎을 조금 더 붙잡아둘 수 있을까 때로 웃음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일들 문서로 꾸며진 일련의 협박들 ..

한줄 詩 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