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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이 그리 멀지 않은 재개발지역 - 심명수

미용실이 그리 멀지 않은 재개발지역 - 심명수 이미 빠져나간 길들은 헝클어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겨진 창들은 출출하게 닫혀 있다 출출한 골목을 오르면 꼬르륵 허방을 딛고 내려오는 어둠 물밀 듯 살아온 날들이 고스란히 철거당하는 마음이다 너는 머리를 자른다 집집마다 추레함이 흘러내린다 켜지 않은 창은 꺼진 창이라 할 수 없듯 나이가 들수록 캄캄해지는 얼굴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졌다 국수가락으로 쏟아내는 풀어진 면발이 찰랑거린다 펌을 한다 나도 서둘러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다 쫓기듯 등 떠밀리는 도미노의 연쇄반응에 집집마다 버려진 세간, 세간살이들 길가에 나앉은 헐렁함, 고단함, 고집 센, 의자, 찌그러진, 쓰레기들이 범람한 나의 몽실몽실한 머릿속이 곱슬곱슬하다 *시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상상인 수제..

한줄 詩 2021.07.15

선천적 우울 - 박순호

선천적 우울 - 박순호 자궁 안에서는 우울마저 따듯했다라고 아직 영글지 못한 그늘 아늑했다라고 쓴, 작위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근황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양수가 터지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것이 핏줄을 붙잡고 기웃거릴 거라고 내가 가진 높이를 휘감아 오를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은 하나의 행성을 닮았다는 천문학자의 말 외계생물 같다는 과학자의 말 뿔 달린 귀신이라는 무당의 말 강박증이 가지를 쳤다는 심리학자의 말 그러나 나는 충분히 우울했으므로 주석 따위는 달지 않았다 까마귀가 앉았다 떠난 나뭇가지 검은 깃털이 걸려 있다 우울을 가꾸던 검은 사제 검은 사체들 두서없이 쌓이는 저 막막함! *시집/ 너의 은유가 나를 집어 삼킬 때/ 문학의전당 애도하는 삶 - 박순호 물 위에 쓴 일기는 멀리 멀리..

한줄 詩 2021.07.15

스승이 필요한 시간 - 홍승완

살면서 학교에서만 스승을 만나는 건 아니다. 물론 학창 시절 가르침을 준 선생이 가장 큰 스승일 것이다. 아직 덜 여문 상태에서 자아 형성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선생은 참 중요하다. 쪽집게 강의로 시험 점수를 올려준 수학 선생을 존경할까. 갈수록 학교가 배움터라기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능력을 키우는 곳이 되어간다. 대학도 학점 자판기로 취업에 사활을 거는 취준생 양성소로 전락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와 탄식을 함께 했다. 오랜 기간 마음에 담고 있던 스승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쓴 홍승완은 팔방미인의 재능을 갖고 있어서 딱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다소 모호한 이력이다. 어쨌든 여러 책을 쓴 사람이기에 작가라 해도 될 듯하다. 그의 가장 큰 밥줄이 글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원 봉..

네줄 冊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