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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강이 숲에 들어 - 박남준

저녁 강이 숲에 들어 - 박남준 강에 나가 저녁을 기다렸네 푸른빛이 눈부신 은빛이 전율처럼 노을을 펼쳐 파문의 수를 놓고 있네 이럴 때면 눈물이라도 찍어내고 싶은데 황금빛 능라의 베틀을 걸어 수만 수천 구비 노래하는 물결들 단숨에 물들이는 시간 말이야 누군가는 저 강에 들어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 하였네 사람도 숲에 들면 고요해지듯이 내리꽂고 솟구치며 세상의 낮은 곳으로 노래하다 분노하여 범람하고 길이 막혀 신음하던 강물도 반짝이는 모래톱과 화엄의 바다 가까이 가닿을 거야 거기 갈대의 숲 안식에 든 숨결들을 생각하며 자장자장 찰랑이다 잦아들겠지 저녁 강은 바다에 이를 것이네 숲에 들 수 있겠지 그곳에서는 비상하던 새의 허공도 낡고 고단했을 발자국도 적막에 안길 것이네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한줄 詩 2021.07.17

단단한 멍 - 이기록

단단한 멍 - 이기록 살아남은 사내가 문을 연다 알몸으로 부르는 빈 구멍들은 숨바꼭질을 하는지 굳은 유령의 옷을 입고 멈추지 않는 비린 장례식에 녹아내리는 피부를 덮었다 퍼붓는 소금기를 남기고 분열하는 식지 않는 불안을 지불하며 비틀거린다 더 깊이 부패하기 전 땅은 등 굽은 문자를 남긴다 목소리를 벗기며 더는 말 할 수 없는 장면 불면의 촉수가 냉정한 가슴을 동여맨다 타는 몸을 잉태하지 말고 사라진 태양을 안고 잠들 수 있게 오지 않은 절망이 사라지기를 우린 단단한 꽃멍이 든다 *시집/ 소란/ 책읽는저녁 그러니 한번 말해보자 - 이기록 그러니 한번 말해보도록 하자 그래, 나는 이미 없는 사람과 살아간다 이미 없는 사람과 연애를 하니 고민스럽다 누워있는 밤에 헐떡일 때쯤 매번 손가락을 잘라 바닥에 뿌려둔다..

한줄 詩 2021.07.17

주름 - 김명인

주름 - 김명인 나이답지 않게 팽팽한 얼굴을 쳐다보다 눈가장이에 더께 진 잔주름을 발견하지만 다독일수록 엷어지는 것도 아닌데 목덜미까지 파고든 몇 가닥 실금 가리려 애쓰는 건 그것이 조락을 아로새긴다는 확신 때문, 아무리 변죽을 두드리며 달래더라도 주름에게 하루하루란 윤택한 시간이 아니다 쏟아져 내리는 여울처럼 시원하던 복근이 어느 날 이마며 두 볼에도 흉물스럽게 옮겨 앉는다 손금 하나로 골목을 주름잡았다는 그를 볼 때마다 잔골목이 하도 많은 동네라서 길 잃기 십상인 나도 맨발인가, 아기는 쪼글쪼글한 주름 발바닥까지 휘감은 채 태어난다 울음을 터뜨리며 종주먹질해대는 말년이 아니더라도 주름은 누구의 것이든 삭은 동아줄인 것을, 그걸 잡고 우리 모두 또 다른 세상으로 주름져간다 주름투성이의 손바닥을 움켜쥐고..

한줄 詩 202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