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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 전장석

만리동 책방 만유인력 - 전장석 고갯마루를 마수걸이한 마을버스가 몇 사람과 접점하고는 내리막길로 이항한다 간판이 분필로 쓰인 책방은 방금 새로운 이론을 설명하려던 중이다 ​저녁 산책의 중력파가 만리동까지 미치면 거기, 작동이 멈춘 낡은 탁자 위의 시간들 수공(手工)이 되어 나를 내부 수리한다 무중력의 이 도시를 용감하게 횡행하던 한 권의 시집, 단 한 줄의 문장 속엔 궤도를 이탈한 소우주가 지구본처럼 떠돌고 평생 떨어진 사과를 줍다 허리 휜 내 이력이 통증이 가시지 않은 호롱불로 밤새 매달려 있다 막대그래프 같은 아파트와 낮은 곡선의 지붕들 그 아찔한 간극에서 자주 멀미하던 바람이 서점 어딘가에 불편한 기록으로 꽂혀 있다는데 언제쯤 그것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불구의 시간들이 버릇처럼 그리움으로 발..

한줄 詩 2021.07.18

거울의 내생 - 고태관

거울의 내생 - 고태관 포대기에서 아기가 운다 잠에서 깨면 늘 목이 쉬었다 혼자서 양말 신고 바지도 입는 여섯 살 풀린 신발 끈 일부러 안 묶는 중학생 담치기하다가 따귀 맞는 고등학생 입대 전 벌거벗은 애인에게 안겨 잠든 새벽 소름처럼 돋아난 눈이 떠진다 다시 잠들면 복도에 쫓겨나 있었다 마흔 번째 생일 분에 넘치도록 취해 잠들었다가 오후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한다 반쯤 감긴 눈에 흐리게 고여 고개를 돌릴 때마다 거울과 마주친다 지금 나는 아흔이 된 내가 꾸는 악몽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리가 끊어진 듯 쑤신다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 자정이 자정으로 이어지고 꿈쩍할 수도 없다 온종일 벽에 기대 있는 늙은이 가는 숨을 몰아쉰다 잿빛의 눈으로 허공을 비춘다 어제 꾼 꿈은커녕 당장 나도 건져 올릴 수 없다 무릎..

한줄 詩 2021.07.18

빗방울들 - 박주하

빗방울들 - 박주하 더 멀리 가 봅시다 가장 멀리 가는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멀리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각자 자기소개는 하지 맙시다 완벽한 하나의 사건처럼 순식간에 불거졌다가 사라집시다 시간이란 슬픈 눈망울을 버리고 흘러내리는 것은 목숨을 만져 보는 일 전생에서도 잊지 못한 미소를 생각하며 최대한 멀리 뛰어내려 봅시다 서로의 어깨를 부축하지도 말고 젖을수록 단단해지는 돌멩이처럼 이 밤을 훌쩍 넘어갑시다 거짓말을 들은 기색 없이 서로의 눈물만 들고 바닥으로 달아납시다 바닥은 힘이 없으니 장렬하게 무너집시다 불빛이 비에 젖어 번지는 저 길바닥의 무늬 속으로 사라집시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사람 칠점사 - 박주하 -무심무석(無心無石) 그는 칠점사에 물려 몇 달 기억을 잃었..

한줄 詩 202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