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녁 강이 숲에 들어 - 박남준

마루안 2021. 7. 17. 21:38

 

 

저녁 강이 숲에 들어 - 박남준


강에 나가 저녁을 기다렸네
푸른빛이 눈부신 은빛이
전율처럼 노을을 펼쳐 파문의 수를 놓고 있네
이럴 때면 눈물이라도 찍어내고 싶은데
황금빛 능라의 베틀을 걸어
수만 수천 구비 노래하는 물결들
단숨에 물들이는 시간 말이야

누군가는 저 강에 들어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 하였네
사람도 숲에 들면 고요해지듯이
내리꽂고 솟구치며 세상의 낮은 곳으로 노래하다
분노하여 범람하고 길이 막혀 신음하던 강물도
반짝이는 모래톱과 화엄의 바다 가까이 가닿을 거야
거기 갈대의 숲
안식에 든 숨결들을 생각하며
자장자장 찰랑이다 잦아들겠지

저녁 강은 바다에 이를 것이네
숲에 들 수 있겠지 그곳에서는
비상하던 새의 허공도
낡고 고단했을 발자국도
적막에 안길 것이네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흰 무명옷이나 잿빛 삼베옷 - 박남준

 

 

풀 먹인 광목 이불이며 요

살에 와 닿는 그 까실까실이 싫었다

외할머니의 손길

손사래를 치거나 버릇없는 발길질로

걷어차 버렸는데 삼복 무더위

옛날을 떠올리며 생모시 홑이불을 꺼낸다

조물락 쪼물락

풀 먹인 그 이불을 덮는다

검버섯 더덕더덕 외할머니의

까끌까끌한 손등이 와 닿는다

그리운 것들 편안해지는 나이에 들었나

미리 준비해 둔다는데 수의는 언제 마련할까

새 옷 불편할 거다

어머니가 지어 준 흰 무명옷이나 먹물 들인 삼베옷

관에 누워도 아무렴 입던 옷이 편하겠지

입고 다니던 옷가지 풀 먹여 입고 가야겠다

 

 

 

 

#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으로 전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시인>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풀여치의 노래>,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중독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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