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의식 - 김윤환 태초에 세족식은 없었다 사람이 만든 거룩함이란 발바닥에 찍힌 생애의 지도가 흐물흐물 풀어지는 쓸쓸한 주문(呪文) 같은 것 확인되지 않는 청결의 율법 발보다 깨끗한 손이 아니라면 타인의 발을 씻는 일은 언제나 절벽의 의식 노아의 홍수 이래 무균의 샘은 없었다 정화수에 비친 제사장의 얼굴 그 눈에 티끌은 어찌하랴 새벽을 창조한 신이 사람의 발을 씻는 날 한번만 허용되는 그 위험한 의식에서 나는 내 발에 묻은 지도를 아프게 아프게 떼고 있었네 발을 씻는다는 것은 껍질을 벗겨낸다는 것 발등에 떨어진 하늘을 건진다는 것 발목을 떼어 하늘로 보낸다는 것 *시집/ 내가 누군가를 지우는 동안/ 모악 주일서정(主日抒情) - 김윤환 저기 휘청이며 오는 교인들의 날숨소리를 주워 담는 예배당 계단 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