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마루안 2012. 12. 31. 21:31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너의 인생에도
한 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 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