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작은 완성을 향한 고백 - 이면우

마루안 2012. 12. 30. 05:39



작은 완성을 향한 고백 - 이면우

 


술, 담배를 끊고 세상이 확 넓어졌다
그만큼 내가 작아진 게다.

 

다른 세상과 통하는 쪽문을 닫고
눈에 띄게 하루가 길어졌다
이게 바로 고독의 힘일 게다.

 

함께 껄껄대던 날들도 좋았다
그때는 섞이지 못하면 뒤꼭지가 가려웠다
그러니 애초에 나는
훌륭한 사람으론 글러먹은 거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슬픔이 찾아왔다
내 어깨를 툭 치고 빙긋이 웃는다
그렇다, 슬픔의 힘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젠 내가 꼭 해야할 일만 하기로 했다.

 

노동과 목욕, 가끔 설거지, 우는 애 얼르기, 좋은 책읽기
쓰레기 적게 만들기, 사는 속도 줄이기, 작은 적선
지금 나는 유산 상속을 받은 듯 장래가 넉넉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작아져도 괜찮다
여름 황혼 하루살이보다 더 작아져도 괜찮다
그리되면 이 작은 에너지로도
언젠가 우주의 중심에 가 닿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면우 시집, 저 석양, 호서문화사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 이면우



슈퍼엔 통조림이 많다 정어리 통조림은 싸다
배움이 짧아 고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정어리 통조림을 꾸준히 선택한다 누구도 이의를
달진 않지만 때로는 저녁 식탁의 젓갈질이 늘어지는 걸 본다
그렇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나는 엄숙히 선언한다
통조림을 믿지 말라. 그 속엔 아직 정체가 안 밝혀진
맹독이 숨어 있어 언제 뛰쳐나와 우리를 꺼꾸러뜨릴지 몰라
그래 마늘과 고춧가루를 뿌려 펄펄 끓여먹는 거다 일순
섬광이 번쩍 지나가고 짧은 탄식처럼 따듯한 저녁식사는 끝났다
모두 평온하고 통조림처럼 무사한 저녁이 슈퍼에 많다
삶에 지치지 않는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작과비평

 





# 이면우 시인은 195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문학을 전공하거나 문학수업을 받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아파트 보일러 수리공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틈틈히 시를 써 왔다. 유용주 시인의 발문을 보면 이면우 시인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음식 주문은 무조건 곱배기를 시키는 등 여러 부분에서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 한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평역에서 - 곽재구  (0) 2012.12.30
서른 살의 박봉 씨 - 성선경  (0) 2012.12.30
추억에 대한 경멸 - 기형도  (0) 2012.12.30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12.12.30
불온한 윤회 - 박남준  (0) 201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