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의 화해 - 류시화
이따금 적막 속에서
문 두드리는 기척이 난다
밖에 아무도 오지 않은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문을 열러 나간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독이
문 두드리는 것인지도
자기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문 열 구실을 만든 것인지도
우리가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수오서재
접촉 결핍 - 류시화
만약 자신이 죽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당신은 허기를 느낄 것이다
뱃속 허기가 아니라 피부의 허기를
당신의 피부는 접촉을 원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벼운 포옹, 어루만짐, 우연한 스침도
봄바람마저 당신의 얼굴을
간지럽힐 수 없다 다가가 손을 내밀지만
뼛속까지 투명한 혼이 되어
누구도 그 손 잡을 수 없고
그 손 또한 다른 손 잡을 수 없다
살아 있을 때 당신은 접촉을 두려워했다
상처 줄까 상처 입을까
그림자 인형으로 살았다
서로 맞닿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아무 접촉도 하지 않는 그림자놀이 속
인형으로
하지만 육체가 없는 지금
당신이 갈망하는 것
당신이 질투하는 유일한 것은
서로 만지고 입 맞추고 껴안는 행위
그것들 모두 가능했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격렬한 통증 같은 접촉 결핍으로
혼이 점점 희미해져 가면서
*접촉 결핍 - 관계에 있어서 친밀함의 요소가 부족하면 인간은 배가 고픈 것처럼 '접촉 결핍(skin hunger)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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