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긴 눈이 더 감기려 할 때 - 서규정
감긴 눈이 더 감기려 할 때 - 서규정 이 봄날에 터지는 건 꽃망울뿐인데 남의 집에 들어가 눈뜨고 낮잠 자는 주인에게 놀라 그 자리에서 졸도한 좀도둑 같은, 뜬눈이 지키는 세월이다 목련화야 내 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그대 발밑에 잠들고 싶어 남들이 다 쓰레기로 버린 사랑이라는 말 꽃잎으로 베고 누워 꿈결처럼 뒹굴래 허공이 왜 또 허공인지 말이 가 닿아야 할 하늘이 낮달로 뒤집어지고 길은 길 위에서 잘려 막 바로 절벽을 이루고 말은 말 끝에서 잘려 뜬금없는 새소리로 차올라서 천지간에 남은 것은 이제 빛뿐이라서 얼마나 간이 커야 좀도둑이 되는 것이냐 길거리에서 손을 덜덜 떨며 훔친 것은 그대 어깨 위에 떨어진 머리칼 한 올 풀린 머릿결이 선율처럼 천상으로 가는 도중이, 아마 공중이었지 바람이 분다, 한 바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