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行 30

순천 낙안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안동 하회마을처럼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다. 민속 박물관처럼 꾸며 놓은 가옥이 아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외형만 초가집이고 내부는 가스 시설과 양변기가 집안에 있는 집이 많다. 어쨌든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순천을 갈 때마다 이곳을 들른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 어릴 적 동네도 이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아련하게 옛 추억이 떠오른다. 사진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정감이 가는 풍경 아닌가.

여섯 行 2015.04.15

진안 마이산과 탑사

전날 전주를 거쳐 아침 일찍 진안행 버스에 올랐다. 진안 터미널에 도착하니 장날이었는지 시골 노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늘 이런 풍경에 눈길이 간다. 화사하고 세련된 것보다 오래 되고 낡은 풍경을 좋아한다. 시골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길다. 심지어 오전에 한 대 오후에 한 대만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의 조건이다. 오전에 들어갔다 유유히 시골 풍경에 빠졌다가 오후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나온다. 이 할머니들은 얼마나 기다려야 당신이 탈 버스가 오는 것일까. 이번 여행은 마이산을 직접 오르지 않고 둘레 코스를 도는 것이다. 이렇게 마이산 주변을 둘러 본 것은 처음이다. 이 등산 코스는 그렇게 험하지도 않고 산길을 걷는 동안 줄곧 말 귀처럼 쫑긋 솟은 마이산이 보이는 매력이 있다. ..

여섯 行 2014.04.27

순천 선암사

송광사를 거쳐 조계산 등산에 나섰다. 해찰을 부리며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안 걸려 선암사에 도착할 수 있다. 산이 그리 험하지 않아 쉬운 등산길 정도의 난이도다. 주변에 빼어난 풍광은 없다. 그저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조용히 사색하면서 걷기에 좋은 깊은 숲길이다. 봄날 연둣빛에 온전히 물든 날이었다. 모처럼 등산객 없는 봄날의 고요를 맛본다. 이런 길을 혼자 사색하며 걷는 호사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어떤 이정표보다 정감이 가는 푯말이다. 선암사에 가까워지는 곳에 등산객을 상대로 국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산에서 국밥이라,, 배가 안 고픈 나는 그냥 패스,, 조계산을 내려 오니 곳곳에 꽃들이 피었다. 상여꽃 빛깔의 꽃들이 묘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예쁜 선암사 입구 길이다. 조금 올라가면 승선..

여섯 行 2013.05.04

순천 불일암과 송광사

이번 여행은 절 구경보다 조계산 등반이 목적이었다. 조계산 사이에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다. 등산 겸 두 사찰을 둘러보는 알뜰한 여행이다. 송광사를 가기 전에 불일암에 들렀다. 한때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다. 스님은 폐허로 버려진 불일암을 새로 짓고 이곳에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불일암 올라가는 길이 무척 예쁘다. 이 길을 무소유 길이라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으로만 무소유를 말한다. 불일암을 찾아가는 수녀들이 보인다. 종교는 다르지만 이렇게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다. 불일암 올라가는 길은 무소유의 길답게 한적하다. 긴 겨울을 잘 인내한 시누대가 조용히 바람소리를 내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불일암은 완연한 봄이다. 곧 떠날 채비를 하는 봄볕이 따뜻해 눈이 부시다. 툇마루에..

여섯 行 2013.05.03

김제 금산사 벚꽃

금산사는 예전에 몇 번 갔던 절이다. 벚꽃을 보기 위해 때를 맞춰 간 것은 처음이다. 금산사 입구부터 벚꽃이 만개했다. 운 좋게 개화 시기를 잘 맞췄다. 금산사는 여러 번 왔지만 벚꽃이 활짝 핀 풍경이 색다르다. 오래 머물며 벚꽃을 구경했다. 마치 올해가 꽃구경 마지막인 것처럼,, 내년 봄이 올 봄과 같을 것인가. 봄날 열흘 중에 너무 소중한 하루였다. 금산사 벛꽃은 나이 먹은 나무가 많은 특징이 있다. 최소 백 살은 넘었을 것이다. 꽃구경은 노인들이 더 열심이다. 저 분들은 앞으로 몇 번의 꽃구경이 남았을까. 중년의 여인들이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저들에게도 벛꽃처럼 화사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여섯 行 2013.04.16

진해 군항제

진해의 벚꽃은 피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더불어 사람도 많아 내게는 별로 매력이 없는 도시다. 진해라는 도시가 사철 찾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벚꽃에서 벗어나야 한다. 4월 초 2주 정도 반짝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는 끝이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내가 진해를 간 것은 늘 벚꽃을 피해서였다. 나름 예술혼이 흐르는 한적함이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벚꽃 시즌만 피한다면 말이다. 여러 번 진해를 갔지만 벚꽃 필 때는 처음이다. 엄청난 인파의 혼잡함에도 벚꽃은 어김 없이 그들을 위해 활짝 피었다. 꽃에겐 죄가 없다. 인파를 피해 가능한 조용한 곳을 걸었다. 봄바람이 옛 추억처럼 불어 온다. 바람이 조용히 속삭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진해 뒷산을 ..

여섯 行 2013.04.06

런던 타워브릿지

어떤 장소든 여행을 갔을 때 풍경과 그 곳에 살면서 보는 풍경은 다르다. 10 동안 살고 있는 영국 생활 중 수없이 템즈강 주변을 걸었다. 런던의 다리는 걷는 사람 위주로 건설이 되어서 동네 골목이나 진배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그동안 일부러 근처까지 걸었던 타워브릿지의 풍경이다. 시간에 맞춰 큰 배가 지나갈 때 다리 상판을 올리기도 한다는데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타워브릿지는 다리 하나도 예술적으로 건설하는 영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실속과 미적 감각을 모두 충족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다리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나라든 도시든 정체성을 담은 상징물은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영국을 홍보하는 그림 엽서에도 단골로 나오는 다리다. 이 주변엔 연중 관광..

여섯 行 2013.01.25

런던 아이가 보이는 곳

런던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런던 아이다. London eye, 놀이시설의 일종인 전망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관람차라고 한다. 어쩌다 보니 이것도 런던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1999년 21세기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설치했다. 원래 5년만 사용하고 철거하려던 것인데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영구적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아직도 이 관람차를 타기 위한 긴 줄은 여전하다. 지금도 미리 예매를 하고 가야 한다. 현장에서 표를 구입해 입장하려면 줄 서서 표 사는데 2시간, 입장하기 위해 또 줄 서서 대기하는 시간 1시간 등 서너 시간의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탑승하면 런던 시내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해질녘에 타게 되면 환상 그 자체다. 야경 또한 두말 하..

여섯 行 2013.01.12

런던 국회의사당 백벤

이 건물을 가장 가까이 보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위에 서야 한다. 이 다리 역시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도보 친화적인 도시란 이런 것이다. 다리 중간쯤 걷다가 반대편 풍경이 보고 싶을 땐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기도 한다. 신호등은 없지만 눈치껏 지나가는 차가 뜸할 때 건너면 된다. 오던 차들도 사람이 건너면 알아서 속도를 줄인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사고 나면 어쩔려구,, 이래도 런던의 교통사고 사망율은 서울보다 훨씬 낮다. 자동차가 우선인 서울에 비해 걷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런던의 자동차 문화다. 국회의사당은 건물도 아름답지만 빅벤이라 부르는 시계탑이 더 유명하다. 런던 시내에 고층 빌딩이 많지 않아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여섯 行 2013.01.11

런던의 마르크스와 만델라

런던의 북쪽 교외에 자리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는 마르크스가 묻혀 있다. 원래 그의 조국은 독일이다. 고향은 룩셈부르그와 프랑스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라는 곳이다. 그러나 말년을 영국에서 보내다 세상을 떠난 곳이 런던이기에 그의 무덤이 런던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 외에도 런던 곳곳에 맑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내가 영국 땅을 처음 밟고 가장 먼저 가본 곳이 바로 마르크스의 무덤이 있는 이곳이다. 문화의 차이겠지만 이곳의 공동묘지는 우리처럼 으스시한 곳이 아니라 노부부가 손잡고 산책을 하거나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원이다. 밖에서 보면 이곳이 묘지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숲일 뿐이다. 거기다 공동묘지 담장 바로 너머에는 주택가가 즐비하고 묘..

여섯 行 201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