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에게 - 박용하

마루안 2022. 7. 9. 21:33

 

 

나에게 - 박용하


그림자하고 있어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
표정 관리하고 있어도 욕보인 것은 욕보인 것

하루도 잊지 않고 죽음이 다가오듯이
하루도 잊지 않고 죽음에 다가가듯이
말과 글이 일생을 따라다닌다
그날 밤 사소한 태도 하나조차도 따라다닌다

증오는 녹슬지 않고
복수는 용서보다 힘이 세고

일생을 걸어도 바뀌지 않을 나와
일생을 걸고 바꿔가야 할 내가
식탁과 침대를 오가고
햇빛과 달빛을 오간다

내가 죽어야 바뀔 내가
어김없이 오늘도 죽어가고
죽어가기 전에 살아가고
죽을 때까지 살아남아야 하고
정치와 사회를 오가고
사물 같은 사람들 사이를 횡단한다

하루도 잊지 않고
풍경은 내 편이 아니고

자연은 누구의 편이 아니고
내 양심은 혼자 있어도 나를 찌르고

내 생각을 바꿔 놓는 타인들과
내가 바꿀 수 없는 타인들의 생각 사이로
호흡과 시선의 나라가 투쟁하고
그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란
내 생각이 얼마나 한심한 내 생각이었는지
환상을 모르는 정신으로 걸어간다

평생을 잊어 가야 할 사건과 함께
평생을 놓아줘야 할 시간과 함께
나는 다른 사람에 있었고
다른 장소에 있게 되었다

강아지하고 있어도 거짓인 것은 거짓인 것
돌맹이하고 있어도 비굴한 것은 비굴한 것

두 번이 아니기에
이번만이기에

그림자하고 있어도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것
혈육이라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내 밖으로 걸어 나간 눈물이 나를 본다
내 밖으로 뛰쳐나간 핏방울이 풍경을 일으켜 세운다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달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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