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었다, 그 가을을 - 황현중
억새밭 오솔길을 지나 강둑에 서면
강줄기 따라 큰 기러기들 떼 지어 날고
먼 산 아래 옹기종기 작은 마을에선
하나둘 깜박깜박 불을 밝힌다
한 끼 저녁에 족한 연기를 피운다
하늘에 그 하늘 속에는
배부른 반달이 별들을 낳고
빈 배는 부는 바람을 노 저어 간다
강물이 별들을 품고
어르듯 속삭이는 시간이 오면은
늘 떠오르는 그 얼굴
너 없는 오늘이 꿈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했었다, 그 가을을
*시집/ 조용히 웃는다/ 그림과책
가을의 끝자락 - 황현중
생각하면
목이 메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황망하게 서울로 떠나간 울 누나의 뒷모습
그것이 사랑인지도 몰랐던 유년의 그 소녀
기우뚱,
산자락 하나가 그림자를 부려 놓는다
바람이 저문 햇살을 물레질하고
붉은 노을 한 폭이
시린 발목에 꽃대님처럼
나를 묶는다
그리운 사람들은 슬픔 속에서만 늘 온전하게 다가온다
이 가을의 끝자락
또 한 번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외로운 은사시나무로 떨지라도
오늘의 내가 그러한 것처럼
살포시 눈감으면
고운 빛 서럽게 젖어드는
깊은 가을 속 마디마디 서린
이 풍경과 이 그리움을
먼 훗날의 나에게 뜨겁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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