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했었다, 그 가을을 - 황현중

마루안 2022. 7. 10. 19:49

 

 

사랑했었다, 그 가을을 - 황현중

 

 

억새밭 오솔길을 지나 강둑에 서면

강줄기 따라 큰 기러기들 떼 지어 날고

먼 산 아래 옹기종기 작은 마을에선

하나둘 깜박깜박 불을 밝힌다

한 끼 저녁에 족한 연기를 피운다

하늘에 그 하늘 속에는

배부른 반달이 별들을 낳고

빈 배는 부는 바람을 노 저어 간다

강물이 별들을 품고

어르듯 속삭이는 시간이 오면은

늘 떠오르는 그 얼굴

너 없는 오늘이 꿈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했었다, 그 가을을

 

 

*시집/ 조용히 웃는다/ 그림과책

 

 

 

 

 

 

가을의 끝자락 - 황현중

 

 

생각하면

목이 메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황망하게 서울로 떠나간 울 누나의 뒷모습

그것이 사랑인지도 몰랐던 유년의 그 소녀

기우뚱,

산자락 하나가 그림자를 부려 놓는다

바람이 저문 햇살을 물레질하고

붉은 노을 한 폭이

시린 발목에 꽃대님처럼

나를 묶는다

그리운 사람들은 슬픔 속에서만 늘 온전하게 다가온다

이 가을의 끝자락

또 한 번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외로운 은사시나무로 떨지라도

오늘의 내가 그러한 것처럼

살포시 눈감으면

고운 빛 서럽게 젖어드는

깊은 가을 속 마디마디 서린

이 풍경과 이 그리움을

먼 훗날의 나에게 뜨겁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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