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생 - 박용하
상처받는 자들 그들도 달빛을 받는다
그 달빛으로 자신만 알고 있는 나무 곁에 서서
쫓겨난 집과 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그 오랜 묵시의 동굴을 따라
지구 반대에서 태양을 건져 올린다
천천히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때까지
천천히 자신의 주소가 소나무 숲일 때까지
어떤 조롱이 그를 더 멀리까지 밤길을 굴리게 한다
어떤 질타가 그를 더 멀리까지 빗방울의 밤들을 꿈 밝히게 한다
상처받는 자들 그들도 달빛을 받는다
그 달빛으로 새들도 깃들이지 않는 벌판의 헛간에서
죽음을 나열하는 뒤죽박죽의 나뭇잎들을 탓하지 않으며
기억의 먼지들을, 모멸을, 생의 푸른 상처들을
불타는 물로 자존의 복수를 방전한다
스스로 구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번개일 때까지
얼마나 많은 비의 눈빛들을
저 하늘의 달과 별 속에 풀어놓은 것일까
*시집/ 26세를 위한 여섯 개의 묵시/ 달아실
춘천 비가 5 - 박용하
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대마초에 시들어버렸을 거야
노파의 주름살 속으로 내려와 쌓이는
검은 나뭇잎의 층계들
누가 이곳에서 삶을 노래할 수 있을까
반항하는 내면이 없는 육체는
뻔히 속보이는 군대 같다
뻔히 속보이는 관료 같다
자작나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숲을 읽을 그 어떤 신문도 이미 죽은 것이리라
진눈깨비 흩뿌리는 거리들, 그 거리의 신호등 곳곳마다
매복하듯 서 있는 가로수들의 의미 없는 웃음들
최후로 남은 바람은 죽음이 피는 첫 번째 나무를 기억한다
아프지 않은 자들은 이미 죽은 먼지의 딱딱한 토막들
무관심은 이미 무서운 관심, 하지만 오해되어 있을 뿐인 관심들
도시의 구석구석을 읽으며 강변으로 밀려가는 파탄의 검은 일기장들
펼치지 마라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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