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 김명기

마루안 2022. 5. 3. 22:42

 

 

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 김명기

 

 

나도 살자고 한 일이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디 갈 곳이라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기억하는 것을 지우고

숙명이란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관계는 참 비통하지

버리고 돌아선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어디선가 속죄를 대신 할 사람이

너를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끊임없이

왜냐고 묻고 있지만 대답해 줄 수가 없다

공손한 너를 데리고 저녁 한때를 걸어가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오직 오늘만은 살아야겠다고 발버둥 치는 우리는

같은 족속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아나키처럼

서로의 슬픔을 막아서는 중이다

더 이상 맨발인 너를 위해 해 줄 게 없구나

곧 체념이 친구처럼 옆에 와 누울 것이다

쏟아붓는 기원과 비통은 회랑으로 흩어질 뿐

아가 쉰 목을 내려놓고 그만 밥을 먹자

어제와 다른 첫 밤이 오고 있다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실려 가는 개들 - 김명기


해 지는 초겨울 속으로 개들이 실려 간다
구멍 뚫린 철창에 구겨진 체념 덩어리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오래전의 미래
한 번도 틀리는 법이 없는 운명이란
명확하고 지독하다

하지만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생이
이제 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뜨기 위해 있는지 감기 위해 있는지
모르는 눈처럼 어차피

출구조차 알 길 없는데
차라리 지나쳐 버린 과거라도 생각하렴
그곳에는 두고 온 한때라도 있으니

지상에 깃드는 날들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으나
지난 한때에 마음을 모두 두고 와
쓸쓸한 저녁 풍경이나 쫓아가는 몸은
참혹이란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뱉지도 못한다

어디 실려 가는 것이 개들뿐이겠나
실려 가고 끌려가는 것에겐 관용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걸 오랫동안 믿고 살았다
낡은 트럭의 속도만큼 숭고는 멀어지고
어느 몸뚱이에선가 창살 밖으로 튀어나온
때 묻은 털깃이 한 올 한 올 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