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렵 - 김화연
무렵이란 말 좋지
마지못해 기울어진 즈음,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거나 빨려 들어가기 쉽지
모든 것을 두고 온 곳이거나
모든 것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
시소처럼 무거운 것은 뜨고
가벼운 것은 내려앉는 그런 무렵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도 좋고
붉게 하교하던 노을이나
제철 꽃들의 기억을
모두가 나누어 갖고 있는 그 무렵들
하루에도 몇 번 있고
한 달에도, 몇십 번 있는
움직이는 무렵
아득한 핑계들을 모아도 좋은
그립다고 말해도 좋고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를 치기도 좋은
해 질 녘 만나면
추적추적 내리는 홑겹의 비를 덮고 낮잠을 자도 좋은
그런 저런 무렵들
어디까지 가는 스산함일까
가을 들녘을 아지랑이처럼 걸어와
흰 머리카락을 벗기다 갈
이런저런 소문으로 마무리되는 무렵들
비스듬한 날씨나 특별한 날짜가 아니더라도
기억나지 않는 날짜들의 근처이거나
여행하는 날짜들의 근처에 있는
그리운 무렵들
*시집/ 단추들의 체온/ 천년의시작
화양연화 - 김화연
어느 해였을까
갓 꺾인 꽃 무리로 나에게 안긴
한 아름의 꽃
아침을 여는 새들과 저녁 바람이 깃든
봄의 사절단이었지만
지금은 사막처럼 갈라진 마른 꽃
나도 한때는 바구니 하나에
세상 봄 다 담긴
그런 봄을
코웃음 치며 받았었지
누구나 지나가는 봄을
붉은 가시 벽과 도도한 줄기를 키워 가며
바구니에 담았던 그런 봄
화등잔 눈빛으로 받은 한 바구니의
옛 봄
꺾인 봄에서도
다시 꽃 피고 또 시들어 간다
어떤 마음으로 봄을 대신할지
이제 남은 봄은 몇 개나 될지
꽃바구니와 봄은 비례할까
버려진 꽃바구니들은
다시 여름의 의미로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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