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편지 - 박지영

마루안 2022. 5. 6. 22:17

 

 

편지 - 박지영

 

 

딸아, 엄마가 보듬고 산 25년의 결혼 생활은 벼락 맞은 감태나무 같았다

 

초로의 노인만 보면 무심하게 타고 내리는 버스에서도 가던 노선을 잃고 따라내려 킁킁거리며 마냥 눈물이 났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림이가 어느덧 밑동이 되어 울고 있었다

 

하루 치의 노동이 새벽에 이르러 멈출 때, 근근이 이어지는 속울음이 어깨 깃을 흔들고 떠나간 사람이 살아남은 사람의 행간을 더듬을 때 날짐승처럼 꺽꺽거리며 출렁이는 어둠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아들아, 꿈처럼 산 오늘이 너희가 밑동이 될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남은 너희들이 살아갈 날에 지팡이가 될 것이니 남은 노동은 얼마나 지난한 것이냐

 

하루 치의 노동에 한 스푼의 감사함으로 구멍 난 오늘을 꿰매며 살아라 인생이 벼락처럼 때리더라도 연수목이 되어라

 

 

*시집/ 돼지고물상 집 큰딸/ 실천문학사

 

 

 

 

 

 

돼지국밥 한 그릇과 오소리감투 한 접시 그리고 소주 한 병과 시 - 박지영

 

 

별생각 없이 들른 돼지국밥 집에서 국밥 한 그릇과 오소리감투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이면 별생각 없이 믿음이 간다 혼자서 유독 즐겼던 소주 한 병, 반쯤 저문 달에 토끼 그림자처럼 삶의 귀퉁에 남은 얼룩진 자국의 외로움 같은 것이었다 사랑이 메마른 자리에 시가 돋아나는 이 황당한 하루의 위안, 밖에는 들이붓는 비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