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일장 나이키 - 이우근

마루안 2022. 5. 6. 21:55

 

 

오일장 나이키 - 이우근

 

 

장세(場稅)를 못 낼 형편이라

외곽 담벼락 아래, 여기는

햇살이 참 따끈해요

그냥 모여 질끈 징검다리 놓아요

종일 기다려 몇 단 판 봄나물

파장 무렵, 눈길 끄는 저 신발

기술력이 좀 떨어진다고

나쁜 신발은 아니라네요

식구들 거 다 챙겨요

서울 것들, 눈여겨보지도 않을 테지만

임대료 유통마진 브랜드파워 세금까지 후려치고도

거뜬하다네요

서민경제 기여한다고도 하고,

그래서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더라도

가야할 길,

조여매고 가고 싶어요

꼭 가요

이류(二流)라도 일류 흉내 내면서

결국엔 가장 하류가 되면

마음 편할 거라 생각해요

나는 가당찮은 희망을 꿈꾸지 않아요

옆 난전에서 만 원 석 장

트렁크 팬티도 마저 사서 입고

 

거침없이

달려 볼까나.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묵호 북항(北港), 멸치국수 - 이우근

 

 

종일 슬슬 우려낸 멸치 국물에

단풍 삶은 듯

저 노을이 내리면

옛날 추억과 같은 반들거리는 김가루

국수는 서로 몸을 비비며

곁든 양념장과 일체로

내 몸으로 온다

오늘 하루도 뜨거웠다

소주도 뜨겁다

마음만 식는다, 그러나

오늘 일당으로 내일을 지탱할 수 있다

그 자잘한 반복이 사랑스럽다

많이 생각하면 교만해진다

묵호는 바래지는 것으로 변함이 없고,

설악산은 멀고 동해는 풍부하다

나는 저 먼 도시의 불빛을

어둠의 갈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평등하면 참 좋을 것을

 

머물고 있지만 또한 떠나기 위한

북항은 어디에도 있다

미련은 접고 희망을 다듬질하는

저 물결이 잦아들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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