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 하나 - 이현승
세상에 부모는 세 종류뿐이다.
서툰 부모,
어리석은 부모,
나쁜 부모.
팔이 부러진 신(神)은
놀라서 울고, 아프고, 잠들고, 소스라친다.
아픔을 보는 것만으로
몇 배는 더 아플 수 있지만
결국 대신 아플 수는 없으며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자기를 책망하고 힐난하는 것밖에 없다.
불행을 믿고,
불안에 의지하며,
행운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쓸쓸한 신앙인일 수밖에 없다.
팔에 붕대를 감은 신은 깨어나
롤리팝을 핥으며
세상을 다 가진 미소로 화답하기까지는.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죄인 - 이현승
회귀란 너무 멀리 떠나왔다고 자각한 자의 것일까
회심은 늘 그 자리에서 멈춘다.
돌아갈 수 없는 자에게
떠나온 자리는 책망의 자리다.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킨 화염이 시작된 곳,
망자와 나눴던 마지막 악수가 선연한 손바닥.
너 같은 인간은 다시는 안 본다고 돌아선 사람의
우물에 탄 독 같은 말이 퍼렇게 떠오르는 귀 우물.
도둑은 이미 다녀갔는데,
자물쇠를 몇 겹으로 잠가놓고도
문밖의 소리에 온 귀를 다 기울이는 집주인처럼
모든 가능성을 다 비워놓고도 집은
금세 우울한 공기로 가득찬다.
진정으로 포기를 모르는 것은 실패이다.
실패를 감았다 풀듯
실패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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