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공장의 불빛 - 이우근
노동이 제물(祭物)이지는 않다
신성(神聖) 하다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걸레 삶은 물로 밥해 먹는
그 인격은 천혜(天惠)의 신분에 반비례
남의 짧은 길, 나는 왜 돌고 돌아가는 지
도생(圖生)의 결과물로
몇 푼 봉급, 훌륭했지, 부끄럽지 않으이
내 한 몸 희생하면 즐거운 나날
훈장이 아니었지만 정말 훈장이었지
잘, 더럽게, 질기게, 살았다고,
삶의 명세서를
나의 코밑으로 드민다.
그러나, 가령, 그렇더라도
불빛으로 위장을 해선 안 된다
불빛으로 위장되어서도 안 된다
생산은 있어도 자위로는 안 된다
소모품으론 더 이상 안 된다
밥 먹기 위해
땅을 다지는 날들
좀 서러운 날들의 연속
어쩌나, 도시락으로 챙김,
그래도 가야 하니,
참 먼 길.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콘돔 장사 내 후배 - 이우근
아침에 뒷좌석과 적재함에
콘돔을 가득 싣고
모텔과 편의점을 돈다
부피가 작아서 힘도 덜 든다
물과 음류수 장사 땐 부피에 비해 마진이 박했는데,
이건 괜찮다
은밀한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을 위해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리라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을 제어하는 일에
일조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배설물을 방어하기 위한
물건을 공급하는데,
한 사람의 뜨거움이 무위(無爲)로 판명된다는 것,
그것 때문에 먹고 살기에 쓸쓸하다
사람들은 모르더라,
다들 폼나는 일만 하려 하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돈 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더라
비록 배운 거 없어도
본질에는 접근하게 되더라
비록 콘돔을 팔아도
새끼들 키우는 데 정말 알짜배기더라
나는 장막 뒤의, 무대 밖의 배우라고 할까
그렇다,
질기고 탄탄하기만 하면
그렇게 세상을 견디며 건널 수 있다
또 스스로 투명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시인의 말
오규원을 생각한다.
홍신선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단단하고 담담한 사슬이다.
그 이름을 생각하며, 그것이 힘이 되어
죽을 때까지 부족해도 길을 나선다.
소멸(消滅)과 파훼(破毁),
잔상(殘像)과 반추(反芻), 그 너머
적멸(寂滅)의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어림도 없겠지만, 꿈꿀 권리,
가능성이 없다면 그게 무슨 삶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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