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대하여 - 황현중
세상의 바깥이 없다면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겠어
꽁꽁 언 손을 엄니가 어떻게
따뜻한 아랫목에 넣어 주겠어
바깥이 없다면
새벽에 오줌 누러 나갔다가 바라보던
달과 별과 여치 울음소리는 어쩌라고
엄니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가 더듬던
그 까만 젖꼭지는 어쩌라고
인심 좋은 애비가 어떻게
동네 사람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신김치에 막걸리 한잔 대접하겠어
바깥이 없다면
고맙다고 누가 인사나 하겠어
잘 가라고 누가 손이나 흔들겠어
세상의 바깥이 없었다면
내가 세상으로 나가
이만큼 사람 노릇이나 했겠어
귀여운 어린애들 머리 한번
쓰다듬을 수 있겠어
어떻게 세상을 어루만지겠어
밖에서 더듬지 않으면
손을 더듬지 않고
입술을 더듬지 않고
서로가 얼싸안지 않으면
그녀를 만나 사랑이나 한번 했겠어
*시집/ 구석이 좋을 때/ 한국문연
선풍기 - 황현중
요즘 들어 고장 잦은 늙은 선풍기
수리하고 돌아오는 길
입가에 잠시 미풍을 돌리다가
덜거덕 토해내는 한숨
먼지 낀 노구의 눈에서
붉은 노을이 질금질금 샌다
요새는 성능 좋은 에어컨도 모자라
최신식 무풍까지 나왔단다
바람 없는 에어컨과 노인 없는 세상,
잘 맞는 궁합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고장 난 선풍기
끼고 사는 자식 어디 있더냐고
수리점 풍 씨의 말이 이내 서럽다
기록적 폭염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
집에 있으면 위험해요, 할머니
동네 이장이 무더위쉼터로 나오라고
신신당부하고 돌아갔지만
고장난 선풍기끼리 한숨 반 울음 반
징징거리는 그곳은 정말 싫다
너만은 흙 파먹고 살지 말라고
등 떠밀어 보낸 자식
살아생전 다시 볼 수 있을까
구부러진 날개로 통풍 앓는 긴 밤
달빛이 논두렁에 마중 나갔다가
여치 울음 가득 데려와 토방에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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