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장동 - 신동호

마루안 2022. 9. 3. 21:10

 

 

마장동 - 신동호


마장동에서는 네발로 걸어도 된다
간혹 소처럼 우우 울어도 뭐라 안 한다

소가 흘린 만큼 눈물을 쏟아내도
그저 슬그머니 소주 한병 가져다놓는 곳

죽음을 담아 삶으로 내놓기를 반복해서
달구지 구르듯 고기 굽는 소리 들리는 곳

인생도 굴러가다보면 깨닫는 게 있고
닳고 닳아 삐걱이다보면 기준도 생기는 법

 

축산물시장의 처녑에선 풀 냄새가 난다

한숨을 주워 담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막막한 꿈이 흔들거릴 땐 마장동에 간다

네발로 기다가 끔뻑끔뻑, 울어도 좋을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

 

 

 

 

 

 

탓 - 신동호

-백석의 자작나무에게

 

 

남도에 가닿아 흰밥 한수저에 새우젓 하나 얹어보았는데, 참 맛깔났는데, 우풍 드는 방구석이 그리운 건 순전히 변방에서 자란 탓이다

 

툇마루를  닦고 또 닦은들 해가 기울면 비릿한 내음이 다시 풍겨올 것, 무덤같이 이불 속 어둠이 편안해질 것, 외로움이 뭔지 겪어보지 못한 탓이다

 

흥에 겨워본 일 없는 생(生), 권력이 거추장스럽고 사랑이 불편하다면 도대체 어디에 머물러 너의 마음을 훔쳐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미워한 탓이다

 

확신에 찬 사람들이 물러서지 않고, 그것을 원칙이라 하는 동안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왜 부끄러워했을까, 그 어떤 삶조차 긍정했던 탓이다

 

북방에 가닿아 국수 한그릇 받았는데, 거칠게 빻은 메밀을 씹어보는데, 눈물이 그리운 건 너무 오래 입속말들을 삼키지 못한 탓이다.

 

 

 

 

# 신동호 시인은 1965년 강원도 화천 출생으로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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