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 강회진
조선시대 시집간 딸은 명절이 오면
어머니와 반보기를 했다지
친정어머니가 반, 시집간 딸이 반
중간에서 짧은 만남 후
아쉬운 이별을 했다는 반보기
세상에서 이토록 간절한 말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내가 반을 가고 당신이 반을 오면
반이라도 만날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 멀리 가거나 혹은
미처 이르지 못해
결국 만나지 못하고
당신과 나의 중간은 어디쯤인가
지도에도 없는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세상에서 이토록 슬픈 말
*시집/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현대시학사
고독한 덩어리 - 강회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6000여 개
이곳이 아닌 다는 곳에 가면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날 본 그 별들이
내가 본 최초의 별이자
마지막 별이었다는 것을
떠나온 후에야 알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은 지나간다는 것
하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탕진한 하루
내 직업은 인생을 견디는 것
때로 무언가는 너무 늦게 알게 된다
매번 놓치며 사는 인생을 보내는 것
왜 순간은 지나고 난 다음 오는 것인가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을 놓는 일
그러므로 늘 반쪽만 갖는 것
왜 사람은 한 사람에게만 사랑받아야 하고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가
아홉 개의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그곳
서로 다른 빛깔이 만나 만들어내는 또 다른 빛깔
서로 다른 바람과 바람이 만나는 그곳
당신과 내가 만나는 그곳을 중심이라 한다면
중심은 고독한 덩어리일 뿐
마음과 마음은 늘 비껴가고 마는 것을
# 강회진 시인은 충남 홍성 출생으로 1997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2004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반하다, 홀딱>,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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