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의 방식 - 박은영
한때, 꽃이었던 적이 있었다
승부욕이 투철해 모이면 패를 섞었다 숨소리를 죽인 채 기리를 떼고 호기롭게 퉁을 외쳤다 뻑, 하면 싸고 나가리가 되었지만 폭탄을 안고 살았다 못 먹어도 붉거나 푸른 띠를 두르고 눈먼 새 다섯 마리를 잡으러 날밤을 샜다
죽고 사는 일이었다 그러나 싹쓸이를 한 인간은 죽지도 않았다 패 한 장을 잃은 나는 광을 팔았다 나중엔 껍데기도 팔았다 막판을 웃으면서 끝낸 적이 있던가
우리는 판을 엎고 멱살잡이를 하며 막판까지 갔다
흩날리는 꽃잎들,
그땐 모두가 화를 잘 냈다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만 있었다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 시인의일요일
만두 - 박은영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비칠까 봐 커튼을 치고 살아도 속내를 들켰다
틈은 많은데
쉴 틈이 없다는 것은 조물주의 장난
우리는 섞이지 않는 체질이지만
좁아터진 방에서 꾹꾹 누르며 지냈다
프라이팬과 냄비 손잡이에 덴 날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대끼고 어우러지고 응어리지고
그러다가 터지면 알알이 쏟아지던 찌끼 같은 시비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아직 찢어지지 않은 것
찢어질 듯 불안을 안고 사는 일이었다
처녀가 아이를 배도 이상하지 않은
무덤 같은 방,
깊이 쑤셔 넣은 꿈속에서
개털과 나무젓가락과 실반지가 나왔다
온도를 잃은 이물질들
방으로 들어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짙게 밴 냄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 아니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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