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민들레의 이름으로 - 박은영

마루안 2022. 7. 1. 21:47

 

 

민들레의 이름으로 - 박은영

 

 

내 몸은 감옥이다

 

문밖을 나서는 일이 이리도 힘들다는 걸 봄이 되고 알았다

 

면회 오는 이가 없어,

 

나는 혼자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종이학을 접으며 차디찬 바닥을 떠나리라 악착같이 살았다

 

내 몸엔 수많은 담장이 있다

절망이 있다

아비는 술을 마시고

어미는 새벽기도를 나가고

그대들의 그늘을 벗어나는 일이

죄목이 되었다

 

종이는 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꿈을 접는 건

가석방 없는 날들을 버티게 해 주었다

 

민들레의 이름으로 지하 계단의 무수한 턱을 내려가 무인점포를 접고

 

생을 접고,

 

내 몸이 부서지는 날

 

나는 천 마리의 학처럼 날아오를 것이다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 시인의일요일

 

 

 

 

 

 

큐리오시티* - 박은영

 

 

나는 무거운 자아를 가졌다

 

중력을 거스르는 새벽

 

무게를 버린다

 

한곳으로 향한 다리와 움켜쥔 손을 떼어 내고 매달린 두 팔과 밤마다 포란의 둥지를 지어 놓은 머리와 무게를 늘린 불안한 생각을 분리시킨다 너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매던 지난날의 몽유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란 적이 있다

 

집착은 화성을 만들고

 

생명이 살 수 없는 근원으로 바꾸었다

 

천근만근 무게를 버리고 미지의 별을 탐사하듯 너의 표면에서 기어이 생존할 것이다 척박한 대지에 물이 돌고 플랑크톤이 춤을 출 때까지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귀환을 포기한 행로

 

너라는 행성으로 진입하는 길

 

이제, 심장 하나만 남았다

 

 

*화성 탐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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