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을 품다 - 홍신선
간밤 토막잠 밀어내 놓고
새벽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뒹굴다 보면
끝내 분별 하나가 시오 리 밖쯤 가던 발걸음 되돌려 달려온다.
갈 때는 갈 때고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빠르다.
(아암 그렇지 그랬었구나)
문득 내 머리맡이 환해진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속 깊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듬고 추슬러
아니 돌려서 생각을 자주 바꾼다.
그럴 때마다
때 없이 서리 묻은 세월의 언저리가
더 시려 와도
밤새
멀찍이 밀쳐 두었던
이 산골 세상을 나는 다시 품에 안을 수밖엔·····.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2022
내 공명(功名)은 - 홍신선
갓 벼린 닻을 내린 닻별인가
입식 다섯을 세운 금동관인가.
빗발이 석축 돌에 옥쇄하듯 온몸을 깨어 무늬를 짓는다.
저 무늬 하나를 만들고자 이 세상 안으로
비는 그토록 숨차게 뛰어왔는가
헐레벌떡 투신하는가.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
쫄딱 비맞은 늙은 개처럼 어슬렁댄 칠십 몇 해
내가 만든 건 마지막 얼굴 파묻고 울
먼 하늘의 치마폭만 한 노을과
이즘 맞춰 넣은 틀니 새새로 새어 나가는 허튼 말뿐.
다만 이제사 돌아보는
먼 젊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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