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다시 세상을 품다 - 홍신선

마루안 2022. 6. 29. 21:35

 

 

다시 세상을 품다 - 홍신선

 

 

간밤 토막잠 밀어내 놓고

새벽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뒹굴다 보면

끝내 분별 하나가 시오 리 밖쯤 가던 발걸음 되돌려 달려온다.

갈 때는 갈 때고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빠르다.

(아암 그렇지 그랬었구나)

문득 내 머리맡이 환해진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속 깊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듬고 추슬러

아니 돌려서 생각을 자주 바꾼다.

그럴 때마다

때 없이 서리 묻은 세월의 언저리가

더 시려 와도

밤새

멀찍이 밀쳐 두었던

이 산골 세상을 나는 다시 품에 안을 수밖엔·····.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2022

 

 

 

 

 

 

내 공명(功名)은 - 홍신선

 

 

갓 벼린 닻을 내린 닻별인가

입식 다섯을 세운 금동관인가.

빗발이 석축 돌에 옥쇄하듯 온몸을 깨어 무늬를 짓는다.

저 무늬 하나를 만들고자 이 세상 안으로

비는 그토록 숨차게 뛰어왔는가

헐레벌떡 투신하는가.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

쫄딱 비맞은 늙은 개처럼 어슬렁댄 칠십 몇 해

내가 만든 건 마지막 얼굴 파묻고 울

먼 하늘의 치마폭만 한 노을과

이즘 맞춰 넣은 틀니 새새로 새어 나가는 허튼 말뿐.

다만 이제사 돌아보는

먼 젊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