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둠이 드는 저녁 들판에 서서 - 류흔

마루안 2022. 6. 25. 22:00

 

 

어둠이 드는 저녁 들판에 서서 - 류흔

 

 

이런 저녁은 아름다움이 적절해서

벌판에 있는 모두가 안심이다

석양이 점차 물크러지고 저들끼리

깔깔대던 새들은 도처에 찌그러졌다

샤워를 하듯 어둠이 머리 위에서 솨

쏟아진다, 나는 꼴려서 하마

터면 옷을 몽땅 벗을 뻔했지

 

계절을 강조하며 나무들도 벗는다

그들 아래로 걸어가면 다투어 잎을 던지는 모양이

탁 탁 내게 침을 뱉는 것 같아

마뜩찮고 기분 엿같다

이런 저녁에 검어지는 들판으로 드는 것은

저녁밥이 없는 집으로 터벅

터벅 걸어가는 것과 같겠지만

 

이만한 어둠이면 족해서

나는 갑자기 기분이 째진다

뒤집어질 만큼 좋아서 어둠마저 뒤집힌다면

아침은 오겠지, 내가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빛이 오겠지, 무지하게 눈부신 애인의

유방 가운데 올연한 갈색의 단단한 어둠을 보겠지

나는 그것을 애써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그리운 인생 - 류흔

 

 

내가 더럽힌 공기를 비롯해

평소에 죽인 모든 목숨이

영면했으면 좋겠다

 

목사가 직업인 친구야

깨끗한 칫솔로 혀를 닦고

세속을 닦고, 닳고

닳은 말씀을 닦으렴

 

너를 생각하는 내가 불쌍해

오늘은 나에게 이런 후회를 한다

인생은 왜 배웠을까?

 

목사가 직업인 친구야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어

스스로 증오하고

속죄하는 중이야

그러니 내 머리 위에 제발 손을 얹지는 말아줘

 

나를 생각하면 내가 자랑스러워

언젠가 세상에서 물러나며

배운 인생을 그리워할 거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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