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는 오는데 - 부정일
하필 전염병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할 때
벚꽃 흐드러지게 핀 길 따라 간 요양병원은
잠시 몸 추스를 동안 머물 곳인 줄 알았네
애들 한번 못 보고 요양병원에 누워만 있다가
꿈인 듯 순간에 찾아온 막차에 올라 도착한 곳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든 가족묘지
한 자리를 택해 누우니 애들이 곡을 하네
손자는 훌쩍이고 아내는 멍하니 보네
어릴 적 병치레로 애먹인 셋째 딸이 슬프게 우네
누구에게나 결국 막차는 오는데
필십 중반 이미 볼 장 다 보았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더 보려고 하겠는가
아내여 먼저 와 자리 잡고 있으니 조금 있다 오시게
덜컹거리며 장의업체 포클레인이 가네
모두가 모여 차례로 막잔 올리며 절을 하네
봉긋봉긋 봉분들 팔 벌려 나란히 선 가족묘지에 나
홀로 두고 늙은 아내와 애들 모두 가네
이제 이승의 연 끊겨, 밤이 오면
말석에 서서 문안 인사 올려야 하네
*시집/ 멍/ 한그루
새벽에 핀 달맞이꽃 - 부정일
이유야 있었겠지
구구절절
상처 준 사실
외면하는 건 못할 일이다
잊을 만하면 저지른 일
돌아보면 빈손
나로 인해 금 간 얼굴
마주 앉아 못 볼 일이다
새벽, 깨기 전
집을 나선 발걸음
옷깃 세우고 망설일 때
달그락 달각 동전 두 닢
재촉하는데 갈 곳은
어디로 가야 하나
# 부정일 시인은 1954년 제주 출생으로 201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허공에 투망하다>, <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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