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막차는 오는데 - 부정일

마루안 2022. 6. 2. 19:38

 

 

막차는 오는데 - 부정일

 

 

하필 전염병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할 때

벚꽃 흐드러지게 핀 길 따라 간 요양병원은

잠시 몸 추스를 동안 머물 곳인 줄 알았네

애들 한번 못 보고 요양병원에 누워만 있다가

꿈인 듯 순간에 찾아온 막차에 올라 도착한 곳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든 가족묘지

한 자리를 택해 누우니 애들이 곡을 하네

손자는 훌쩍이고 아내는 멍하니 보네

어릴 적 병치레로 애먹인 셋째 딸이 슬프게 우네

 

누구에게나 결국 막차는 오는데

필십 중반 이미 볼 장 다 보았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더 보려고 하겠는가

아내여 먼저 와 자리 잡고 있으니 조금 있다 오시게

 

덜컹거리며 장의업체 포클레인이 가네

모두가 모여 차례로 막잔 올리며 절을 하네

봉긋봉긋 봉분들 팔 벌려 나란히 선 가족묘지에 나

홀로 두고 늙은 아내와 애들 모두 가네

이제 이승의 연 끊겨, 밤이 오면

말석에 서서 문안 인사 올려야 하네

 

 

*시집/ 멍/ 한그루

 

 

 

 

 

 

새벽에 핀 달맞이꽃 - 부정일

 

 

이유야 있었겠지

구구절절

상처 준 사실

외면하는 건 못할 일이다

 

잊을 만하면 저지른 일

돌아보면 빈손

나로 인해 금 간 얼굴

마주 앉아 못 볼 일이다

 

새벽, 깨기 전

집을 나선 발걸음

옷깃 세우고 망설일 때

달그락 달각 동전 두 닢

 

재촉하는데 갈 곳은

어디로 가야 하나

 

 

 

 

# 부정일 시인은 1954년 제주 출생으로 201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허공에 투망하다>, <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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