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못 견딜 고통은 없어 - 박노해

마루안 2022. 6. 2. 19:32

 

 

못 견딜 고통은 없어 - 박노해

 

 

젊어서 못 견딜 고통은 없어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면

의식을 잃거나 죽고 마니까

살아있다면 견디는 거지

 

고통에도 습관의 수준이 있어

그러니까, 고통을 견뎌내는

자기 한계선을 높여 놓아야 해

 

평탄한 길만 걷는 자들은

고원 길이 힘들다 하겠지

젊은 날엔 희박한 공기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봐야 해

더 높은 길을 탐험해 본 자에게

고원쯤은 산책 길일 테니까

 

자신의 두 발로 생존 배낭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묵직이 올라서던

심장이 터질 듯한 그 벅찬 길이

자긍심이 되고 그리움이 될 테니까

 

사람들은 정작 자기 시대가

얼마나 좋은 시대인지를 모르지

나만 고통스럽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억울하다고 체념하지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고통은

물리적 몰락이나 통증이 아냐

심리적 몰락이고 영혼의 붕괴이지

우린 인간 자신으로 강해져야 해

고통에 민감하되 잡아먹혀선 안돼

 

젊어서 못 견딜 고통은 없어

고통을 견디는 강도만큼이

잉태의 크기이고 희망의 크기야

고통받을 그 무엇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 테니까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작게 살지 마라 - 박노해

 

 

내 힘으로 공들여서
쟁취하지 못한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고
받는데 익숙해지면
늘 받기만 바라는 존재로
퇴화해 갈 것이다

쟁취하라, 오직 자신의 힘과 분투로
그리하면 두 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쟁취한 그것과
언제든 새로운 것을 쟁취할 힘과
가능성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작게 살지 마라
작아도 작게 살지 마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따라가다 보면
소소한 것들이 기쁨이 되고 고통이 되고
소소한 것들이 전부가 되고 상처가 된다

작게 살지 마라
지금 가진 건 작을지라도
인간으로 작게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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