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학생부군신위 - 이우근

마루안 2022. 6. 5. 19:51

 

 

학생부군신위 - 이우근

 

 

제사 때,

아들이 물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학생이셨고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니 애비 먹이고 가르치려

삶을 실천했다고,

그만한 공부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이미 신(神)의 위치에서

책임 없는 하늘에서

떵떵거리며 사실 것이다

지상에서 못한 거 화풀이로 횡포를 부리면서

 

창밖을 봤다

 

그 쓸쓸함의 생애가 사무친다.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경강선 - 이우근

 

 

곤지암에서

경강선 전철을 탔다

세종대왕릉 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지 못해

대왕(大王)에게로 걸어서 갔다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왕릉에서 가만히 종일 잘 놀았다

김밥의 단무지와 홍당무와

시금치의 색깔이 그리 고운 줄 몰랐다

단촐한 소풍이었다

과정과 결과가 다 아쉬웠지만

그나마 노을이 고왔다

산 발품에 하루가 충만했다

소박한 불후(不朽)를 생각했다.

 

 

 

 

# 이우근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문학.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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