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군신위 - 이우근
제사 때,
아들이 물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학생이셨고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니 애비 먹이고 가르치려
삶을 실천했다고,
그만한 공부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이미 신(神)의 위치에서
책임 없는 하늘에서
떵떵거리며 사실 것이다
지상에서 못한 거 화풀이로 횡포를 부리면서
창밖을 봤다
그 쓸쓸함의 생애가 사무친다.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경강선 - 이우근
곤지암에서
경강선 전철을 탔다
세종대왕릉 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지 못해
대왕(大王)에게로 걸어서 갔다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왕릉에서 가만히 종일 잘 놀았다
김밥의 단무지와 홍당무와
시금치의 색깔이 그리 고운 줄 몰랐다
단촐한 소풍이었다
과정과 결과가 다 아쉬웠지만
그나마 노을이 고왔다
산 발품에 하루가 충만했다
소박한 불후(不朽)를 생각했다.
# 이우근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문학.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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