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끔 구름 많음 오후 한때 소나기 - 송병호

마루안 2022. 5. 3. 22:35

 

 

가끔 구름 많음 오후 한때 소나기 - 송병호

 

 

일기예보에 벌이나 나비가 관여할 수 있을까?

 

휴대전화나 비밀번호는 암호화되어 있는데

예보는 예보와 상관없이 모호한 자리를 암호화한다

점친다는 것.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그만이지만

심기가 불편하다

 

밑줄 친 그래프에 마침표가 없는 부호는 끝이 아닌

꽃의 농담 같다

얇은 외출을 만지작거리는 비구름의 속삭임

햇볕에 구운 바삭한 찻잎 부각을 찻잔에 올린다

안개알갱이가 이동하는 후텁한 습濕

 

소나기가 오려나

 

믿었던 외출이 젖어

진정할 수밖에 없었던 냉정, 자기 결여는 증상을 짚지만

꼬리 잘린 도마뱀의 행적이 묘연한

추측성 요행으로 점쳐보는 배후, 뜻밖에

날숨을 고르듯 제2막을 예보한다

 

구멍 숭숭한 나뭇잎을 가로지른 자벌레

여전히 무엇을 재고 있다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나는 본래 고아였는지도 모른다 - 송병호

-유폐

 

 

횟집 수족관은 똑같은 볕이 든다

어둠에 속한 어둠이 환한 방

아랫도리만 조명된 박물관 조각처럼

나는 허리 잘린 어둠이다

 

에덴에 집 한 채 지어놓은 첫 사람

돌아올 수 없는 동쪽 저편

나를 신원해 줄 별 하나 툭 떨어질까

 

조립하는 것은 미완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合할 수 없는

더 넓혀지지 않는 다리 사이 보폭

값은 절반으로 잘릴 내 품평 멀지 않다

 

고요를 채집하는 기도문은 세모의 궤적

조밀히 얽힌 말씀의 행간을 엿본다

 

사다리에 딛고 선 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흰 음지를 바스락거리는 빛의 기척

양팔을 벌린 첨탑 십자가 거기

손 흔드는 이 누구인가

 

태어난 곳을 잊어버린 나는

본래 고아였는지도 모른다

 

 

 

 

# 송병호 시인은 2018년 <예술세계> 신인상 수상,  2019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궁핍의 자유>, <환유의 법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