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막의 꿈 - 나호열

마루안 2022. 3. 29. 21:48

 

 

사막의 꿈 - 나호열

 

 

어느 사람은 낙타를 타고 지나갔고
순례자는 기도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때마다
화염을 숨기고 뜨거워졌다가
밤이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별빛으로
얼음 속에 가슴을 숨겼다
나에게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침묵과 고요 속에서 태어난 바람으로 지우며
육신의 덧없음을 일깨우곤 했다
오늘도 낙타의 행렬과 순례자들이
덧없이 지나갔지만
나는 꿈을 꾼다
그 사람이 오고
백년 만에 비가 내리고
백년 만에 내 몸에서 피어나는 꽃을
어쩌지 못한다


​안녕이라는 꽃말을 가진 사람

 

 

*시집/ 안부/ 밥북

 

 

 

 

 

 

후생(後生) - 나호열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얼굴도 없이 뼈도 없이 맹물에도 풀리면서 더러운 것이나 훔치는 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고고했던 의지를 꺾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무엇이든 맞서 싸우되 한 뼘 땅에 만족했던 우직함이 나를 쓰러뜨렸다
나무는 벌거벗어도 실체가 없음의 다른 말이다 벌거벗어도 보일 것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품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다 해도 잠시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는 휴지가 되기로 한다 나는 당당한 나무의 후생이다

 

 

 

# 나호열 시인은 195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86년 <월간문학>,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촉도>, <눈물이 시킨 일>, <안녕, 베이비 박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