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연구 계획 - 전대호
이쪽 바닷자락이 슬슬 쓸려나가는 걸 보면서,
수평선 너머 저쪽 자락을 어떤 거대한 손이
쓱 잡아당기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여섯 시간 후
이쪽 자락 도로 슬슬 밀려드는데,
거대한 손은커녕 바닷자락을 문 갈매기조차 안 보여
냉철하게 가설을 바꿨네.
수평선 근처 물밑에서 어떤 거대한 손이
거기 한가운데 자락을 엄지, 검지, 중지로 살짝 쥐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위로 올렸다 하는 것이 틀림없어!
수평선 근처 바다는 늘 잔잔하여,
살짝 건드린 자리도 대번에 눈에 뛸 테니,
검증은 일도 아니리.
수평선 바로 위에서 저공비행으로
수평선을 넘나드는 사인곡선을 그리면서
거기 잔잔한 바다, 더없이 고요한
그 기하학적 평면을 샅샅이 살피자.
꼬집힌 자국이 틀림없이 보일 것이다.
잘 다린 셔츠에 잡힌 구김살처럼 또렷할 것이다.
가자, 수평선으로!
*시집/ 지천명의 시간/ 글방과책방
봄, 졸음 - 전대호
수수꽃다리 줄기 휘어
유모차 탄 아기 코에 꽃송이 대주니
우는다, 방긋.
천상 포유동물이어서
꽃향기가 좋은 게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기 재운 후,
식물 영혼은 베란다 화초 사이에 빨래처럼 널어놓고
동물 영혼은 아스팔트 위에 고양이처럼 풀어놓고
인간 영혼 혼자 몸 지키며 까닥까닥 존다.
지금 스르르 잠입하는 이 햇살이
옳거니 하고서 물고 간다면,
몸이든 창백한 이성이든 하나만 후딱,
옳다구나 하면서 물고 간다면,
나 연기처럼, 물감처럼, 물결처럼
봄의 너른 품으로 퍼져나갈 텐데,
곧장 해탈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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