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사목 1 - 박소원

마루안 2022. 3. 25. 22:32

 

 

고사목 1 - 박소원


글렀어, 다시 잎이 자라기에는
습관성 절망들 나이테 속으로 골똘히 스며든다
가지마다 귀버섯이 피고 이끼가 푸르다
글렀어, 다시 잎이 자라기에는,,,,.

 

무른 목질에 절망들 평화적으로 새겨질 때
바람도 멀리서 온도를 낮추며 온다
겨울을 향해 고독하게 서 있으면
병 없이도 순간 죽을 것 같다

신도시 아파트단지 잘 가꾸어진 화단에서
죽어가는 병은 나에게로만 스며든다
여러 종의 여러 그루의 나무 중에서
병이 나에게로만 스며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람 앞에서 부러지고 건조되는
그 속에 든 평화에 나는 이미 길들여졌다
달콤한 병증에 중독된 나는
순순히 병을 받아드리는 자세를 고수한다

오래 묵은 병의 의지로 나는 선 채로 죽어간다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이 의지는

가지 끝에서

죽음의 끝에서

 

다시 생으로 회류하는가

봄을 향해 서 있으면 허공들 몸살을 앓는다

먼 곳의 끝으로부터 물기가 돌기 시작한다

 

 

*시집/ 즐거운 장례/ 곰곰나루

 

 

 

 

 

 

가로등 5 - 박소원

 

 

어머니는 나를 낳고 어둠의 대모가 되었다

그 날 이후, 한 번도

같은 밥상에 둘러앉지 못하는 핏줄들은

모두 살려고 외지로만 떠도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죽은 지 오래 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밖으로만 떠도는 운명이 꼭 부모 탓만은 아니다

 

어쩌다 외곽에서 외곽만을 비추며

눈물로 막을 수 없는 일들 자주 보는 걸

높은 다리 밑으로 미끄러지는 비명소리에

와글와글 청력이 약해지는 걸

 

이웃들은 전생의 죄라고 숙덕거리지만

저승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어머니

그 희미한 빛으로 스며든다 한참을 흐느끼다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