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마음속 용 - 장석주

마루안 2022. 3. 12. 22:35

 

 

내 마음속 용 - 장석주

-이중섭을 위하여

 

 

그대 때문에 세상이 한층 살 만해진다.

갚을 길 없는 그대에 대한 내 마음의 빚

한국 소처럼, 뿔을 치켜세운 분노도 슬퍼

마음의 무거움 잠시 벗고 가벼워지면,

 

어제는 몹시 외로웠다고,

오늘은 못 견디게 그리웠다고,

너를 사랑한 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엽서를 쓰자.

 

-나는 세상을 속였어.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만 얻어먹고

공술만 얻어먹고

놀았어.

 

후일 무엇이 될 것처럼.

나는 이 세상에 죄송해.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난다

 

 

 

 

 

 

옛 노래 - 장석주

 

 

저녁으로 감자를 구워놓고

무쇠 난로 연통가에 젖은 옷 마르기를 기다렸네.

목수인 아버지는 늘 귀가가 늦고

낮은 담벼락 담뱃값만하게 박힌 창문으로

알전구 불빛 병아리 오줌만큼 흘러나올 때

내 방황의 발걸음 행복했었네.

가난한 아이들 웃음소리 기쁜 개나리꽃으로

다닥다닥 피어나 강물처럼 젖은 몸으로

오늘 변두리 옛 동네를 지나면

어설픈 철망으로 막아놓은 철거민들의 무너진 살림터

때로는 가는 길이 슬픈 적도 있지만

가슴에 품은 퇴색한 옛 사진 한 장

행복은 추억으로만 남는 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