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붉은 사막 - 박숙경

마루안 2022. 3. 12. 22:47

 

 

붉은 사막 - 박숙경


눈물 글썽이던 별 하나를 머리맡에 두고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와 불시착 사이에서
당신을 또 놓쳤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 걸었지만
발자국은 금세 사라졌다

온몸이 아파왔다

새끼를 빼낸 자국은 오래된 모래층 같아서
손톱을 세워 긁고 나면
다시 자라나는 배꼽
한참이나 눈을 뜨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간신히 새벽꿈을 건너면 온통 붉은 사막
몸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주소

낙타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꿈속에서 누가 말했던 것 같다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시집/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문학의전당

 

 

 

 

 

 

흔적 - 박숙경
-대상포진


압축된 잠복기가 풀리면서
꽃의 비명이 바람에 실려 왔다

저, 출처 불분명의 레드카드
낯선 내가 뾰족이 돋았다

자정 부근에서야
어둠의 모서리에 오른쪽의 통증을 앉힌다

낡은 자명종 소리가 명쾌하게 번지면
조각난 봄의 퍼즐이 방안 가득 흩어지고
나는 다시, 나를 앓는다

칼날같이 깊은 밤

공복의 위장이 허기를 바깥으로 출력하면
소원은 자주 초라해지고
미완의 날개는 천칭자리와 사수자리 사이쯤에 엉거주춤,

지독한 사랑은
오른쪽 등에서 태어나 겨드랑이를 가로질러
명치끝에서 머문다

 

 

 

 

*시인의 말

 

한때라는 말을 생각했다.
오늘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쓸쓸할 것이므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진실 앞에서
하루의 말문을 닫고
상처라서 더 눈부셨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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