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먹다 - 김주태

마루안 2022. 1. 21. 21:38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먹다 - 김주태

 

 

몸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면

아침부터 단내가 났다

그런 날이면 목에 때 벗긴다고 단골집에 둘러앉았다

노릿하게 익은 돼지 살점에 허기가 밀려와

급하게 젓가락 들면

손가락이 굳어 젓가락질이 되지 않았다

왼손으로 오른 손가락 마디를 주무르고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을 풀어도

굳어진 손가락은 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퍼먹었는데

양파를 많이 넣었는지 알싸하게 눈이 매웠다

조적공과 철근이 내 눈을 훔쳐보고

눈물 바람이나 하는 줄 알았는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 판을 뜨라고 했다

골병이 몸에 박히면 빼내지 못한다고

하루빨리 접는 게 살길이라고

어서 이 판을 뜨라고 했다

 

 

*시집/ 사라지는 시간들/ 삶창

 

 

 

 

 

 

순대 골목 - 김주태

 

 

스무 살 적 출석하듯

드나들었던 그 집

이름은 바뀌었지만

이제 늙어버린 주인은

마흔 된 딸과 순대를 썰고 있다

수십 년 만에 가도 알아본다

어디 갔다 왔어요

이 동네에서 숨어 살았다는 말은 못 하고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어 고향 왔다니

서울 가면 다 돈 벌어서 오나요

그게 아니고 서울 가면 다 겨우겨우 먹고 삽니다

그 말 하고 싶었지만 돈 많이 벌어

다시 고향 왔다고

너털웃음 흘리고 나니

왠지 그냥 기분이 좋네

 

 

 

 

# 김주태 시인은 경북 봉화 출생으로 2000년 <작가정신>과 2006년 <시와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라지는 시간들>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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