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 날아와 - 김정미
지독하게 먼 허공과 콘크리트 바닥을 오르내리는
새를 본다
단 하나의 표정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사는 새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도
추락을 상상하지 않는다
나도 어쩌면 무심히 창밖에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어떤 시절을 떠올리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친구가 오래된 의자를 잃었다
상실이 익숙해지는 동안
추락은 계속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텅 빈 버스를 그냥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친구는 새 의자를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새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추락과 비상을 떠올렸다
죽는 것도 결국 사는 일이라는
새들의 말을 한 줌씩 모으는 늦은 저녁이
젖는다
*시집/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상상인
마지막 페이지에 - 김정미
나는 엎질러졌다
겨울이 자작나무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겨울이 가고 나서야
나무가 대신 오래 울어주었다는 것을
숲이 사라지고 나서야
빗방울이 새처럼 내게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쪽 어깨를 내어주고도
흔들리지 않는 너는
어떤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는
슬픔이었다
별이 뜨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에
누군가 서 있을 것 같아서
나는
# 김정미 시인은 강원대 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했고 2015년 <시와소금>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베르 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가 있다. 2017년 춘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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