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래의 나에게 말 걸기 - 김추인

마루안 2022. 1. 15. 21:31

 

 

미래의 나에게 말 걸기 - 김추인

-호모 커넥서스Homo Connexus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2040년쯤

그대는 나인가

나의 유사 종인가

황금비율 아니라도

낡고 삭아가는 대신 바꿔 끼운 관절과 치아

망막과 새 달팽이관으로

씽씽해진 그대를 봐봐

 

우리는 상상이 가는 대로 구현해 내는

호모 데우스

신의 격노가 도달치 않아 신의 역사를 대리하는 불안의 연대에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도 미래지만 허물고 파고 제동 장치 없이 내달리는 우리의 내일이 겁난단 말이지

봐봐 자연의 불호령이 시작된 게야

벌레도 아닌 균사도 아닌 것이 알은 알인데 쥐뿔도 없는 것이 무수히 뿔난 알이라니 쯧, 놈은 기척도 없이 행성을 꽁꽁 묶는구나 함부로 나대던 나를 너를 격리 시키는구나

 

유령도시만 같은 텅 빈 거리의 적막 가운데

하늘 맑아지고

물속 투명해졌다니

이거 부끄러움 맞지?!

그래도 믿자꾸나 아직 오지 않은 그대들의 건강한 내일을

 

 

*시집/ 해일/ 한국문연

 

 

 

 

 

 

알들의 오디세이아 - 김추인


문 따는 일로 생애가 저물었습니다
노을도 아름답군요
맨 처음 알은 어리둥절
없는 발밑에도 하늘이 있었고
어떻게 굴러도 길이 났습니다

돌아보면 길은 시작일 뿐
문과 계단의 연속이었지요
열어 열어도 앞을 막고 서던 문들
얼마나 숱한 문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힘겹게 층층 계단 올랐는지
얼음의, 물의, 곤죽의, 강철의, 꿈의
별에서 별로 층층 뛰기
암벽에서 모래의 시간을 빼고 더하는
무위의 일이라니

꽃들의 길도 이리 아득할까요

다 기억하지 못하는 다행 속에 길들은 잎맥처럼 가지런한 적이 없고 사방 뉴런이 뻗고 돌기들은 돌부리마냥 걷어찼습니다 계단들의 패대기치는 심술로 출발점에서 다시 기어올라야 했던 무수한 알들의 행로
얼마 남지 않았을 문들은 생각합니다 허약과 무기력의 황망한 시간들이 예약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길 중에도 사막은 꽃길이었습니다 몇 구비고 구릉들 지나 모래 폭풍 속에 문을 찾는 일, 바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일

'고와라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는 모래알들의 오롯한 꿈길'

늘 신기루는 지평선 쪽으로 문을 가리켰지요
세상에 없는 문을

 

 

 

 

 

*시인의 말

 

평행우주다

다중(多重)의 내가 네거리에 출몰하곤 한다

저 여자 혹은 저 남자

내 옷을 걸치고

내 얼굴을 걸치고

그가 걸어가고 있다 문이 있는 걸까

저 시선은 내 생각의 행간에서

비어져 나온 금속 이미지, 은의 아침이다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