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술집, 그 집의 술국 - 우혁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밤이 깊고 입김이 거셀수록
겨울은 엄마 집에만 머무는 거 같았다
술 없이 밤을 견딜 수 없는 족속들
오로지 시키는 건 술국뿐
가끔 식은 밥을 말아대며
씩씩대는 김 씨는
국물을 삼킬 때만 사람이 됐다
식은 국물을 몇 번이고 다시 데우고
그때마다 내장이며 순대며 은근슬쩍 더 들어가는
덤덤한 덤은 엄마도 모르고 김 씨도 몰랐다
그러니 나도 모르고
꾸벅 조는 겨울이 더 슴슴한 맛을 내는 거였다
하나 아니면 둘
빨리 비우지도 못하는 잔이
자꾸 밤그림자를 게워내는 것 같았다
어느 유적지에서 오래 유물이 되고 싶었던
입맛이 몇 번 사람이 되곤 하는 밤이었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불온한 몸 - 우혁
파도에서 네가 걸어 나왔다
몇 번의 화장(火葬)이 있었고
그때마다 여지없이 폭발음이 새 나왔다
수습된 이름들은 모두 지독히도 썼는데
발이 젖었다
그날 내 가슴 위에
너의 잇자국이 났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제 지울 수 없겠구나
한 발 더 가까워지겠구나
내 이를 검게 물들인 것도
그때부터였지
-넌 발 모양이 이미 영장류가 아니야
그림자만 가득한 바닷가에서 너는 속삭였다
파도는 아랫목으로 퇴화 중이었다
수 세기 동안 눈에 띄는 변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따금
'모든 흔적은 사라진다'라고 적는다
끝없이 윗목으로 수렴하는
너의 기관(器官)들
내겐 걸을 때마다 허공을 깨무는
버릇만 목숨처럼 남았다
*시인의 말
언 강가에 흐릿해지는
풍경은 어디서 한번은 본 것 같아
그저 비누면 족하지
어제를 씻는 데는
흐린 얼굴은 유령처럼 지나가고
언 강이 나를 몰고 온다
단단한 수면을 온통 나로 채운다
나를 머금은 거울
한 모금 그림자
어디로 뱉을까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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