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이미 - 박인식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죽어 지냈기에
숨죽여 나를 죽여왔으면
보다 못해 그 나무가
먼저 죽었을까
탁-
찰나의 삶을 죽음의 영원으로 꺾어
자신의 죽음 앞에 이미 와 있었던
내 죽음으로 데려가
지옥에서 보낸 랭보의 한 철보다
어느 날 산에서 영원으로 꺾어진 내 첫사랑의 스물두 살보다
죽음에서 보낸 내 여름 한 철
*시집/ 내 죽음, 그 뒤/ 여름언덕
즐거운 오타 - 박인식
방랑보다 황당한 인생은 없다던
내 방랑인생의 황당을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 는 황홀로 바꿔놓고
운전면허도 차도 없이
음주운전하는 음주시인을
음유운전하는 음유시인으로 가꿔놓고
산을 첫사랑한 산벗이
산벚꽃으로 진 슬픔을
산벚꽃 산에서 지다, 로 은유하더니
<내 죽음, 그 앞>이라는 이번 시집의 원제도
<내 죽음, 그 뒤>로 고쳐
죽음까지 살아서 즐기게 하는
오타의 즐거움
거기서도 여기서도
내 인생
즐거운 오타의 발견
# 박인식 작가는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춥거나 춥지 않거나 시에 있다. 시집으로 <겨울모기>,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인수봉, 바위하다>, <언어물리학개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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