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찮은 일들 - 김한규
웃어서 복이 온다면 누가 가로채는가
하루 종일 서 있는 웃음을
커피 자판기에서 컵도 안 나오고 물만 흐르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인가 어디에 대고 물어볼 것이 없는 생이 흘러들어 가는
하수구에서 생쥐가 올라오고 발목이 물린다
악착같이 습지에서 바르작거리는
월세의 빚진 꿈이여
일 년 거치로 잠시 죽음을 미뤄 놓고 나간 아침에 비가 내린다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구덩이가 놓인다
걷지 못한 빨래 뒤에서
문 뒤에서 벽 뒤에서 끊어진 가스 호스 아래서
무거운 이불 속에서 썩고 있는 시체를
모르는 채 넘어가는 하루를
웃으면서 셀 수 있는가
우리라고 부르며 묵살당한 얼굴로 뜯겨진 이름에 걸려 엎어지는 인간이라는 이상한 상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일어나는 것이지
매를 맞는 기분으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불행이 되어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파란
좋은 데가 어딨어요 - 김한규
터미널이 좋겠네
의자와 자판기도 있고 무엇보다
얼굴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지하에서 계단이 올라오고 있다 죽치던 다방은 증거품으로 실려 갔다 적출된 미래에서 커피를 나르던 언니
오가는 새사람 사이에서
보따리를 놓고 간 사람
수원 용인을 거쳐 안산 골프장인데 삼 개월 후면 실장이야 삼 개월이 몇 개의 삼 개월을 먼저 보내고
숲을 치워 버린 자리에서
앞을 내다보지 않는 눈이 녹고 있다
시작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두고 간 겨울옷은 싸서 부쳤어요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이 나오는 것 같아서
언니 거기 어디예요? 보낸 거는 받았어요? 여기는 다 뜯겼어요 가스 밸브 열어 놓고 라이타 한 방이면 끝나는데 그 새끼가 가스도 끊어 버리고 언니 끝났어요?
터미널에서 누가 봤다는 말
절대 믿지 마요
언니
# 김한규 시인은 1960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201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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