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어린왕자의 - 강건늘

마루안 2021. 11. 15. 22:10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어린왕자의 - 강건늘

 

 

사실들이 사라져버린

먼 우주에서 마주하는 공허

 

깊은 회한에 잠겨 무수한 별들을 바라본다

 

내가 사귀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

오직 기억만이 있을 뿐

 

꽃은 시들고

아예 사라져버리고

바람도 멈추어 선 지금

 

처음처럼 다시 혼자 서 있다

깊은 잠을 자야 한다

스스로 깰 수도 누군가 깨울 수도 없는

아득한 잠

 

이제 행성도

나와 함께 사라질 시간

 

그런데

쉬 잠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귄 것들

잎사귀들처럼 다시 살아나고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죽지 않는 나무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시집/ 잠만 자는 방 있습니다/ 달아실

 

 

 

 

 

 

희망 사절 - 강건늘

 

 

지하도 한 켠

박스 안

옅은 어둠이

어둠을 덮고

누워 있었다

 

어둠이 쉬는 곳

절망의 쉼터

희망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희망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이곳까지 왔으니

더 이상 희망을 강요하지 마세요

죽을 힘을 다해 살았잖아요

희망은 얼마나 고단한가요

희망은 얼마나 쓰디쓴가요

나를 찾지 말아요 더 이상

희망을 희망하지 않아요

 

 

 

 

*시인의 말

 

옅은 마음이여

모든 푸름이여

나의 작은 새들이여

 

너무 외롭지 않기를

그저 자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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