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여수 바윗골 - 육근상

마루안 2021. 11. 18. 22:50

 

 

여수 바윗골 - 육근상

 


자귀나무 꽃이 도깨비불처럼 창호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마당으로 나와 헛간을 변소를 텃밭을 둘러보다
장꽝 옆으로 난 조붓한 대밭 길 따라 강 마을까지 왔다


지금은 깊은 밤이라서 개 짖는 소리보다
먼 데서 넘어왔을 빗소리 더욱 깊게 드러나
매어놓은 쪽배 곁에 물빛으로 출렁거리고 있는데
강 건너 여수 바윗골 징 소리 가뭇하게 들린다


누이는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고깔 쓴 노파가 시키는 대로 삼배하고 있을 것이다
내세를 생각하다 북받치는 듯 흐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수 바윗골 다녀온 날이면 온몸 힘 빠지고 불덩이 삼킨 듯 목 타올라
엄니 모시는 일에서 비켜나 뱃전 맴돌고 있다


어느 한 곳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내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출렁거리는 물결 소리로 자란 억새나 쑥대와 같은 것이어서
오늘 밤은 신(神)할머니 댁 댓돌 적시는 빗소리로 운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속초 - 육근상

 

 

속초는 늦은 밤 도착해야 하네

늦가을 비 오시는 날

옛날 애인이 원탁 앉아 졸고 있을 무렵

우산도 없이 드르륵 들창 들어서면

불 끄려다 깜짝 놀라 어깨 툭툭 치며

오쩐 일여 이 밤에 여기까지 오게

핀잔이면서도 도루묵 한 손 구워내네

 

나는 흩날리는 가랑잎처럼 곧 일어설 것이네만

소주 한 병 비틀어 마시고 영금정 가자

영금정 파도 보러 가자 영금정 가네

영금정 바라보면 바람도 가슴 풀어헤치고

코끝이 벌건 빗소리 긋네

 

속초 밤바다는 차가워

웅크린 검은 물결이 마지막 길 내어주네

속초는 내어줄 것 다 내어주고

나와 같이 쓸쓸하기만 하네